핵심설비 국산화, HVDC ‘A에서 Z까지’ 모든 게 가능

16일 LS산전 부산공장에서 직원들이 초고압변압기를 제조하고 있다.
16일 LS산전 부산공장에서 직원들이 초고압변압기를 제조하고 있다.

김해공항에서 30분간을 달려 도착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화전산업단지. 이곳에 국내 최대 규모의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초고압직류송전) 설비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LS산전이 2011년에 총 1100억원을 투자해 만든 HVDC 전용공장이다. 건물 2~3층 높이의 대형 초고압변압기를 생산하는 곳이니만큼 멀리서도 LS산전 공장은 눈에 띄었다.

지난 16일 기자를 맞이한 이종혁 HVDC 생산팀 부장은 “화전산업단지 내 LS산전 공장부지는 1만1157㎡(3375평)에 공장 연면적은 5910㎡(1788평)에 이르고, 약 2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며 “HVDC 관련 부품의 제조, 성능검사, 조립, 시험, 시운전까지 모든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HVDC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교류(AC)전력을 직류(DC)로 바꿔 도시로 보내는 기술이다. 직류송전은 교류에 비해 에너지손실이 적어 더 멀리 전력을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 들어 대륙과 한반도의 전력망을 HVDC로 연결하는 동북아수퍼그리드(국가간 전력망 연계)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어,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한 글로벌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고 있다.

우리보다 40~50년 앞서 연구개발에 뛰어든 ABB, 지멘스, GE 등에 비해 국내 기업은 후발주자지만 그 중에서도 LS산전은 GE로부터 관련 기술을 도입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 부장은 “HVDC의 핵심설비로는 전압을 낮춰주는 변환용변압기(CTR)와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싸이리스터 밸브(Thyristor Valve)가 있다”며 “LS산전은 두 가지 핵심설비를 국산화해 제주 실증단지에 성공적으로 설치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부품 ‘싸이리스터’ 지름 20cm 원반 6개가 촘촘히 연결

먼저 싸이리스터 밸브 공장에 들어섰다. 공장 중심부 바닥에 직사각형 모양의 큰 밸브 모듈이 제작 중이었다. 성인 3~4명이 누울 수 있는 넓이에는 각종 부품과 전선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핵심 중의 핵심부품인 싸이리스터를 실제로 보니 크기가 매우 작았다. 대략 지름 20cm 정도의 원반으로 6개가 촘촘히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이 작은 싸이리스터가 직류를 교류로,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싸이리스터와 주변 부품으로 이뤄진 ‘스노버 회로’는 튀는 전압을 잡아 일정하게 전압이 출력될 수 있도록 돕는다. 워낙 정교한 작업이다 보니 밸브제작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제작된 밸브는 여려 겹으로 쌓여 내전압시험 등 각종 테스트를 거쳐 출하된다.

기존 싸이리스터를 이용하는 산업용 정류기와는 달리 HVDC용은 수십kV에서 수백kV의 직류전압에 연결되기 때문에 고전압 절연 설계 기술뿐만 아니라 30년 이상의 긴 수명을 보장한다.

이 부장은 “검증을 위해 3000kV 300kJ 충격내전압 시험기와 900kV 3000kVA 교류 내전압 시험기, 1500kV 직류 내압기, 국내 유일 HVDC밸브 시험기 등을 갖추고 있다”며 “싸이리스터 밸브는 기존 제주∼해남 간에 설치돼 있는 기존 제품과 달리 지진에 강하고, 설치가 쉬우며,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체를 건물 천장에 매다는 방식(Suspending Type)으로 구축된다”고 말했다.

한 번에 6개의 본체가 만들어지는 초고압변압기 생산공장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초고압변압기 생산 공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싸이리스터 밸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건물 3층 높이(6m) 정도로 보이는 HVDC 변환용변압기를 비롯해 컨테이너보다 큰 초고압변압기들이 공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한쪽에선 권선공정이 한창이다. 원통 모양의 권선기에 전류가 흐를 수 있게끔 작업자가 동각 선(순도 99.999% 이상 순동)을 한 땀 한 땀 마는 작업으로, 변환용변압기의 첫 번째 공정이다.

변압기가 크다 보니 권선기도 성인 여러 명이 붙어야 둘레를 잴 수 있을 만큼 컸다.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마치 실타래를 한 올씩 돌돌 감는 것처럼 권선공정에 몰두하고 있었다.

돌돌 말린 권선코일은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데 이 구멍에 철심이 삽입된다. 코일을 통해 전류가 유입되면 철심에 자기장이 형성된다. ‘전자기 유도 법칙’을 통해 전압을 낮추고 올리는 변압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본체는 90~150도 사이를 유지하는 사우나(진공 건조로, VPD)에 들어가 80시간 동안 바싹 말려 수분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로 나오게 된다.

송명국 LS산전 초고압변압기제조팀장은 “이곳에선 한번에 6개의 본체가 만들어지는데 본체가 VPD에 들어가면 보통 1대당 350L의 수분이 방출된다”며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HVDC 변환용변압기 한 대 만드는데 2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본체 완성이 끝나면 외함에 넣고 절연유를 채운다. 기타 설비공정이 마무리되면 비로소 육중한 초고압변압기의 위용이 나타난다. HVDC 변환용변압기의 무게는 전압(최대 550kV)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300t 정도로 육중하다. 초대형 트레일러에 한 번에 싣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시 제작한 순서대로 분해해 고객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다.

운이 좋게도 이날 500kV급 HVDC 변환용변압기의 마무리 공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부산공장의 초고압변압기 양산능력은 연간 1만5000MVA, 약 6000억원 규모다.

송 팀장은 “지금 만들고 있는 제품은 북당진~고덕 구간 HVDC 변환소에 들어갈 2차 사업물량”이라며 “설비 가격만 70억원 안팎으로 주요공정에 전문 엔지니어의 수작업이 필요해 제작기간만 약 10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당진 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평택시 고덕면 삼성전자 공장쪽으로 수송하기 위해 약 34km 지중구간(해저 6km 포함)에 국내 최초 육상 HVDC 송전선로를 깔고 있다. 송전선로 양쪽에는 교류를 직류로, 직류를 다시 교류로 바꿔주는 변환소(변전소)가 들어선다. 이 변환소에 투입되는 핵심설비를 LS산전이 직접 만들고 있다.

현재 제작 중인 제품을 비롯해 2016년 이후 LS산전 부산공장에서 만들어진 HVDC 변환용변압기는 총 7대다. LS산전은 2014년 ‘북당진~고덕(3180억원)’ 프로젝트를 수주한데 이어 올 초에는 1766억원 규모의 ‘동해안~신가평’ 건설 사업을 수주하는 등 실적을 쌓고 있다. 동해안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부산공장을 책임지고 있는 홍재웅 공장장은 “울진에서 신가평으로 이어지는 345kV HVDC 건설사업에 총 변환용변압기 18대를 납품할 예정”이라며 “변압기 용량(404MV)도 기존 북당진~고덕 사업에 납품되는 것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홍 공장장은 “엔지니어로 20여년간 일하며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불합리한 부분은 개선하고, 직원들이 편리한 환경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위험시설인 만큼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송명국 초고압변압기제조팀장이 HVDC 변환용변압기를 소개하고 있다.
송명국 초고압변압기제조팀장이 HVDC 변환용변압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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