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 원광대 교수(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장)
류권홍 원광대 교수(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장)

지난 10월 3일 서부텍사스유는 배럴당 76.41달러였다. 그러던 서부텍사스유는 11월 28일에 50.29달러로 하락해서 2개월 사이에 약 26달러가 빠졌다. 30% 넘게 하락한 것이다. 유가가 급락하자, 12월 7일 빈에서 열린 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OPEC 회원국들과 OPEC 회원국이 아니지만, 중요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향후 6개월 동안 하루 120만 배럴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OPEC+는 OPEC 국가들이 80만 배럴, 러시아 등 OPEC 회원국 아닌 산유국이 40만 배럴의 감산에 동의한 것이다. OPEC+가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시장은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다가, 120만 배럴 감축 발표와 함께 국제유가는 2.2% 상승했다. 감산 합의에서 미국의 제재로 인해 석유 수출이 제한된 이란과 국내적 상황으로 석유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제외되었다.

국제원유시장이 최근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가는 원인은 무엇일까.

산유국들에게 유가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은 너무 큰 시련이다. 석유 판매대금으로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하기 때문에 유가가 하락하면 할수록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석유를 더 많이 팔아야 한다. 더 많이 팔려면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공급 증가는 다시 유가의 하락을 불러온다. 악순환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에 어두움을 드리우고 있다. 중국의 경제가 식어가면서 석유 소비량이 줄고, 국제유가는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OPEC 회원들은 고유가 회복을 위해 감산을 원했다. 그리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난 10월 터키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까슈끄지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살인 사건에 왕세자의 관여 여부,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적 역학 관계, 사우디아라비아를 옹호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 베네수엘라의 복잡한 국내 상황들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더불어 국제유가의 변동성을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까슈끄지 사건이 없었더라면, 트럼프의 OPEC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압력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까슈끄지 사건으로 약점을 잡힌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더 강력하게 감산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미국과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는 러시아가 오히려 감산에 통 큰 합의를 해주게 되는 드문 상황이 발생했다.

신(神)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유가의 예측이지만,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는 그 예측이 더 힘들게 된다.

다만,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OPEC이든, 미국이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유가에 의존하는 OPEC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의 셰일오일 개발업자들의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50에서 60달러 수준이기 때문이다.

셰일오일, 셰일가스의 생산으로 다시 세계 1위의 산유국이 되었고,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미국으로서는 셰일오일 산업이 어렵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저유가는 좋지만, 50달러 이하의 저유가는 버티기 힘들 수 있다.

반면, 늘 걱정은 우리나라다. 러시아든, 미국이든 국내 자원이 이미 충분한 나라들이다. 오르면 오르는 데로, 내리면 내리는 데로 좋다. 물론 OPEC은 올라야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르거나 내리거나 어려움이 있다.

저유가는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의 산업이 힘들게 되고, 고유가는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일반 국민, 항공 업계들이 어려워진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에 가까워지자 우리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세금을 낮춘 정책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정확히 엇박자였지만 당시는 이렇게라도 국민 부담을 경감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에서 쟁점은 전기, 특히 원자력 발전에 몰입되어 있지 않나 싶다. 신재생의 한계로 인해 원자력을 급격히 포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또한, 원자력은 전기에 국한된 쟁점이다. 석유화학, 수송용 에너지로서의 석유, 가스에 대한 정책 방향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 반도체 팔고, 자동차 팔아서 비싼 석유를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들여올 것이냐, 어느 정도는 수익으로 회수할 것이냐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에너지 특위가 원전 특위를 넘어 국가적 에너지 문제를 다루고 미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쟁을 넘어 실질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회의 책무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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