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재점화됐다. 이번만큼은 왜곡되고 뒤틀린 가격구조를 개선하자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모양새다.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해 ‘값싼’이라는 꼬리표를 숙명처럼 달고 사는 전기요금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프레임에 발목이 잡혀 전기요금 현실화 문제는 매번 합리적인 논의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맥없이 사그라졌다. 징벌적 성격이 강한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도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정책으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계 생활비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통신요금과의 비교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 무엇이 돼 버렸다.

최근 발표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전문가그룹의 권고안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다시 수면위로 등장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권고안은 공급원가나 사회적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낮은 전기요금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전력도매가격 연동제’ 도입도 제안했다. 석유, 가스, 유연탄 등 발전연료의 가격 변동에 따라 요금을 자동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주택용, 산업용 등 용도별로 나뉜 현행 요금체계도 전압별로 전환하는 한편 계절이나 시간에 따른 계시별 요금제 등 다양한 선택적 요금제를 개발해 국민들의 선택의 폭을 넓힐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는 낮은 전기요금이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세계 7위 수준의 에너지 다소비국가지만 에너지 이용효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이제는 묵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그룹은 이 같은 권고안을 바탕으로 내년까지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이와 발맞춰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가 한전과 함께 전국 1만 가구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실태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전기요금 누진제가 반세기만에 개편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전기요금 누진제도는 주택용에만 적용돼 왔다. 전력을 많이 쓰면 요금도 많이 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누진제가 도입된 1974년 당시에는 합리적인 정책이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높다. 고소득층일수록 경제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데다 스마트한 고효율 가전기기 사용비율이 높아 가정 내 전력사용량이 적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 실태조사가 소득수준과 전기사용량의 상관관계를 따지는데 초점이 맞춰진 이유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전기요금 상승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의 공감대를 어떻게 얻어내 사회적 저항을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시작점을 찾기위해 차근차근 지혜를 모아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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