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입시제도의 현주소를 쉽게 살펴볼 수 있는 한 TV 다큐멘터리가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된 문제를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영어문제다.

한국어 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영어권 나라 외국인 대학생 2명에게 수능 영어문제를 풀게 했다. 3개 문항이 제시됐는데 그 해 수능에서 오답률이 가장 높았던 문제들이었다. 이를 푸는 외국인 대학생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어렵네요”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12명 중 단 1명이 3문제를 모두 맞췄다.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한 대학생도 5명이나 됐다.

일생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조차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기위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답답한 마음이다.

모국어를 다루는 국어문제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최승호 시인의 ‘아마존 수족관’이라는 시와 관련해 출제된 2개의 문제가 청중들에게 제시됐는데 많은 이들이 정답을 맞혔다. 원작자인 최승호 시인에게 문제를 풀게 했다. 그는 2개 문제를 모두 틀렸다. 원작자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학생들이 풀고 있다는 얘기다.

다큐멘터리에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매달릴 필요가 없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주 많은 문제를 수없이 풀면 수능점수를 높일 수 있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좋은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몹쓸 제도의 틀이 청소년들을 공부라는 나락으로 내몰고 있는 듯하다.

18조6000억원.

통계청이 조사한 우리나라 한 해 사교육비 총액이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7만1000원이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8만4000원으로 늘어난다. 고등학생은 51만5000원, 중학생은 43만8000원, 초등학생은 30만7000원에 달한다.

통계자료가 맞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을 키우는 필자도 통계청이 제시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훌쩍 넘기고 있다. 주변의 학부모들 얘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평균은 말 그대로 평균일 뿐. 사교육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가구의 소득에 따라 그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짐작된다.

11월 15일 201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외줄 타기하듯 공부에만 매달린 청소년들이 운명을 건 하루를 보내게 된다. 주입식으로 배운 지식들을 외우고, 또 외우면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어 수능에서 패배한 학생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안타깝다 못해 처절하게 슬픈 일이다.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을 붙잡고 말해주고 싶다.

높은 점수, 좋은 학교가 절대로 인생을 결정짓지 않는다고. 지금은 그런 것 같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아니더라고. 내 말을 믿으라고. 또 다른 길이 열린다고.

우리 꼭 그렇게 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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