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학설과 달리 방사선 저항성 메커니즘의 다양성 증명해내
세계적 권위 학술지, 펨스 마이크로바이올로지 리뷰 게재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데이노코쿠스속 사진과 방사선에 의해 손상된 DNA가 회복되는 사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데이노코쿠스속 사진과 방사선에 의해 손상된 DNA가 회복되는 사진.

원전사고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의 생존 원리에 대한 기존 학설을 바꾸는 논문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X-선으로 완전 멸균한 통조림이 계속 발효되는 현상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된 미생물인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Deinococcus radiodurans)는 강력한 방사선에 노출돼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방사성폐기물을 분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전 세계 학자들은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를 포함하는 데이노코쿠스속(屬) 미생물들이 모두 방사선 저항성을 가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아우르는 단일한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 아래 집중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일반론을 깨고, 라디오두란스(radiodurans), 데제르티(deserti) 등 다양한 데이노코쿠스속 미생물들이 단일 메커니즘이 아닌 각자 고유의 방사선 저항성 메커니즘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유전자 분석을 통해 알아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하재주)은 첨단방사선연구소 임상용 박사 연구팀이 프랑스 원자력청(CEA) 그루트(A. Groot) 박사팀과 공동으로 ‘데이노코쿠스속 미생물의 방사선 및 산화 스트레스 유전자 다양성에 대한 리뷰’를 미생물학 분야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펨스 마이크로바이올로지 리뷰(FEMS Microbiology Reviews, IF 11.392)’ 온라인판에 게재했다고 25일 밝혔다.

데이노코쿠스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 중 가장 강력한 방사선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이 10그레이(Gy)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수일내 사망하고 생명력이 강한 미생물도 200Gy의 선량에서 죽는데 반해, 데이노코쿠스는 5000Gy에서도 생존해 사람에 비해 방사선에 500배 이상 강하다.

데이노코쿠스의 방사선 저항성에 대한 연구는 방사성폐기물 처리, 방사선 항암 치료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방사선에 강한 바이오 소재 산업에서 유용하다. 최근에는 NASA가 우주 미생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하고 있지만, 방사선을 이겨내는 메커니즘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임상용 박사 연구팀은 전 세계 296편의 논문에서 보고된 250여개 방사선 저항성 단백질을 토대로 11종의 데이노코쿠스속 미생물들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방사선 저항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IrrE/DdrO 단백질은 공통으로 갖고 있지만 기존의 통념과 달리 실제 DNA 손상을 복구하는 단백질들과 그 작동 메커니즘은 각 미생물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기존 연구의 방향을 대전환한 것이며 방사선 저항 원리가 자연계에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의미로, 바이오 소재에 활용할 수 있는 항산화 단백질, 항산화 소재의 자원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FEMS 측에서도 미생물을 연구하는 다양한 그룹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결과로 주목했으며, 논문 주저자인 임상용 박사는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이 주관하는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에 선정됐다.

연구팀은 추후 방사선 저항성 미생물의 방사선 반응신호 전달 메커니즘과 관련 유전자 기능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더불어 원자력연구원은 국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극한 환경 미생물로 자원 가치가 높은 방사선 저항성 미생물의 활용을 돕기 위해, 방사선 저항성 미생물을 수집·배양하는 은행(RAD-BANK)을 구축해 방사선 저항성 미생물과 함께 이번 연구결과 밝혀낸 DNA, 단백질 등 다양한 유전자원을 분양할 계획이다.

연구팀을 이끈 임상용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미생물의 방사선 저항성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향후 고등동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체의 방사선 반응 원리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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