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에서 정비 업무를 하고 있는 민간정비업체 직원들을 해당 발전소(발전 공기업) 정규직으로 전환이 검토되고 있다.

발전 공기업과 민간 정비업체에 비상이 걸린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민간정비업계는 "발전소 정비를 맡은 직원들은 대부분 민간 정비업체의 정규직인데, 이들을 발전공기업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는 민간 정비업계를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발전 공기업은 이유가 좀 다르다. 민간 정비업체 근로자를 발전소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면 비용 절감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전 정비 업무를 민간에 개방한 현행 정비사업체계가 완전히 무너진다는 게 이유다.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는 건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민간정비업체 소속으로 발전소 정비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 전원을 발전 공기업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발전 공기업이 자체 인력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비든 용역이든 발전소에서 일을 하는 모든 근로자들은 당연히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명분의 하나다. 대상 인력은 3800여명이다. 이들은 수산더스트리(900명), 금화PSC(650명), 일진에너지(530명), 에이스기전(383명), 한국플랜트서비스(380명), 원플랜트(185명) 등에 분산돼 있다. 민주노총의 요구, 물론 일리는 있다. 수주 여부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민간정비 직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건 문재인 정부의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 확대에도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이후’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발전정비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정부가 10여 년 동안 공들여 육성해 온 민간 발전정비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 법이야 개정하면 된다지만 현행법상 발전소 정비사업은 용역이 아닌 공사로 발주하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따져 정규직 대상도 아니다. 청와대의 서슬에 눌려 서류를 만지작거리고 있긴 하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적지 않은 직원들은 발전소 정규직 전환을 전혀 반기지 않고 있다. 민간정비업체는 특별히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발전소 정규직이 되면 정년의 통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비용증가는 더 큰 부작용이다. 3800명의 인력을 5개 발전 공기업에 분산한다면 한 공기업당 약 750명이다. 발전 공기업 평균 인력이 약 2500명이니 3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 조치가 시행될 경우 발전 공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발전 공기업이 국영기업과 다를 바 없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결국 비용증가는 전기요금 인상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총파업 등 발전 공기업 노조의 단체행동에 따른 전력대란 발생의 개연성이다. 모두 민주노총 소속이라 소요의 개연성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양질의 일자리 확대에 반대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부작용도 없고, 경제적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민간정비업체 직원의 발전 공기업 정규직 전환은 그런 게 아니다. 득 보다 실이 너무도 많다. 특정한 3800명에게, 그것도 적지 않은 수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 확대’라는 구호에 떠밀려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제대로 된 정책인가.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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