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잭슨 감독(메가히트작 ‘보디가드’를 연출했다)의 2016년 작 ‘디나이얼(Denial)’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역사학자(데이빗 어빙)가 자신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로 비판한 역사학자(데보라 립스타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실제 사건을 다뤘다.

어빙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즉 소송을 당한 쪽에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진실을 증명해야 하는 영국 법을 활용해 런던에서 재판을 제기한다.

역사적 사실을 덮고 왜곡하려는 자와 진실을 증명하려는 자의 법정다툼. 자칫 싱거울 것 같지만, 꽤나 흥미진진하다.

심지어 아우슈비츠 가스실엔 청산가스를 투입할 구멍이 없다며 ‘구멍이 없으면 학살도 없다’는 어빙의 기세등등한 주장이 초반 승기를 잡기도 한다. 집단 성폭력의 증거를 대라며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의 파렴치함이 데자뷰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위안부’라는 표현은 일본 정부가 공식 사용하는 종군(從軍)위안부에서 비롯된 용어다. 따라서 동의할 수 없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사실이 승패의 게임 판으로 들어오는 순간, 진실을 지켜내야 하는 쪽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마땅히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기의 재판에서 영국 법원은 다행스럽게도(?) 어빙이 자신의 사상적 믿음에 기초해 역사적 증거를 왜곡, 날조하고 사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따라서 데보라의 비판은 진실된 표현이니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한다.

○…때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진실들이 위기에 처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괴롭고 당황스럽다. 거짓을 말하고도 책임을 지지하는 상황과 마주하면 화가 치민다.

며칠 전 전두환 회고록이 객관적 근거 없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1심 민사소송 판결이 나왔다. 회고록은 “시민들을 암매장했다는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발포는 정당방위권 행사였으며 상부나 어느 누구의 발포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등 70여 곳에 걸쳐 사실을 왜곡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30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설 것으로 보인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을 가둬두고 강제노역, 학대, 성폭행을 일삼았다. 공식 집계만 513명이 숨졌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 상고하라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

지난한 과정과 더딘 시간을 거쳐서라도 진실이 승리하면 그나마 낫다. 아직 우리사회엔 과정의 어디쯤인가 놓여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악은 디테일하고 부지런하다. 반면 선은 쉽게 피로하고 무관심과 금세 친해진다. 그래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건 그 역(逆)보다 훨씬 쉽다.

부정(否定)의 시대를 견디려면, 다시 말해 진실을 지키려면,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는 수밖에 없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뻔뻔한 거짓말이 활개 치는 고통과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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