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0일 보호복을 입은 일본 기자들이 후쿠시마현 오쿠마에 있는 도쿄전력 원전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 저장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2016년 2월 10일 보호복을 입은 일본 기자들이 후쿠시마현 오쿠마에 있는 도쿄전력 원전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 저장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는 인적·물적 피해가 광범위하다. 또 손해와 질병으로 인한 피해가 사고 직후 나타나기보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대규모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원전 사고는 국경을 초월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원자력 손해에 대한 국제적 협력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세계 각국은 국내법과 함께 국제협약을 통해 원자력손해배상체제를 보완하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최근 중국의 원전굴기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원전 상황이 변했다. 동북아에 원전이 밀집돼 만약을 대비한 안전협력 체계가 요구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중국의 가동 가능한 원전은 43기이며, 일본은 42기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건설 중이거나 건설 계획 중인 원전은 69기에 달한다.

또 WNA가 지난 8월 발간한 ‘2018 세계 원자력 성과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신규 건설 중인 원전 59기 중 18기를 중국에 짓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한 일본의 가동원전 수는 2016년 말 3기에서 올 6월 9기로 늘었다. 현재 원전 19기가 재가동을 신청한 상태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중·일 3국은 ▲안전규제 요건의 강화 ▲안전규제기관의 조직 및 기능 강화 등 안전성 강화를 국가 원자력 정책으로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어 정책 공조의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후쿠시마 사고 조사·분석 참여, 방사선 재해 대책 공조 등 보다 구체적인 협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국제 원자력손해배상의 5대 원칙

일반적으로 국제 원자력손해배상제도는 ▲엄격위험책임 ▲배타적 책임(책임 집중의 원칙) ▲책임총액제 ▲재정적 보증의 책임 ▲한시적 책임(10년간) 등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엄격위험책임은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청구인의 책임을 경감시키고, 문제되는 원자력 사고와 손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만으로 사업자에 손해배상 의무와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원자력 사고의 경우 사후적인 증거 확보와 사고의 실질적 원인자 확정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사업자의 배타적 책임 원칙을 인정한다.

책임총액제는 원자력 사고 발생 시 사업자가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배상총액의 상한을 제한하는 것으로, 사업자의 책임한도를 초과하는 사고 손해에 대해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암묵적 암시가 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사업자는 제3자 책임에 대해 자신의 책임한도만큼 재정적 보증을 확보·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고, 이를 위해 각국은 사업자에 원자력손해배상책임에 대한 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있다.

보험사나 사업자는 인적·물적 손해청구에 대해 원자력 사고 발생일로부터 일반적으로 10년 동안만 책임을 부담한다. 하지만 원자력 사고 손해의 만발성이 부각돼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시간적 제한 확대가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파리협약·비엔나 협약·파리-비엔나 협약 공동의정서

파리협약은 1960년 7월 유럽 OECD 국가를 중심으로 체결됐으며,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를 국가 간 협력해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약이다. 이어 1963년 5월 체결된 비엔나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사고에 대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후원 아래 체결된 피해보상 협력 조약이다.

1988년 파리-비엔나 협약 공동의정서가 체결됨에 따라 파리협약과 비엔나협약의 당사국은 손해배상에 있어 자국이 가입하지 않은 다른 협약체제의 적용이 가능해졌다. 특히 보상조치액 증가, 소멸시효 연장, 원자력 손해배상범위 확장 등 국제규약이 강화됐다.

IAEA 40개국이 가입한 비엔나협약에서 사업자 책임한도는 부지당(원전 6기 기준) 약 5000억원에 상당하는 최소 3억 SDR(Special Drawing Rights)이다. 비엔나협약의 국제기금협력조약인 국제보충기금협약(CSC)은 사업자 책임한도를 초과하는 손해에 대해서 협약국들의 갹출로 추가배상금을 조성하기 위해 체결됐다. 일본은 2015년 4월 15일 CSC에 가입했고, 한국과 중국은 아직 미가입 상태이다.

◆동북아 안전 협력 나서야…韓·中 CSC 동시 가입 추진

인접국가에서 원자력 사고가 발생할 경우 CSC 가입여부에 따라 셈법이 복잡하다.

한·중·일 3국 중 CSC에 가입한 일본은 조성기금 분담의 의무를 지지만 조성된 기금을 활용해 인접국 피해를 보상할 수 있다. CSC 협약에 의하면 조성기금의 절반을 해외 피해보상에 사용해야 하며 협약국에 우선적으로 보상한다. 이에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해 한국이 손해를 볼 경우 피해 보상 가능성이 높지만, 중국 원전 사고로 피해를 입는다면 손해배상을 받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중·일 3국 모두 CSC에 가입하면 3국 중 어느 한 국가에서 원자력 사고 발생 시 조성기금 약 297억원을 부담하고, CSC 조성기금을 활용해 인접국에 조성금의 50% 한도로 우선 피해보상이 가능하다.

특히 동북아 3국이 모두 CSC에 가입함으로써 타 CSC국의 원자력 사고 시 조성기금에 대한 권리를 획득할 수 있고, 3국의 공조체계를 갖추는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동북아 지역의 원자력 안전 협력 체계 수립은 지역의 원자력 안전 체계 강화는 물론 자국의 원자력 안전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동북아 지역의 인접성을 고려해 비상대응 협력과 원전 사고 시 상호 보상 체계의 확립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8차 한중일 원자력고위규제자회의(TRM)가 2015년 10월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제8차 한중일 원자력고위규제자회의(TRM)가 2015년 10월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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