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재・정비・해체 공급망 연계
하나의 원자력 생태계로 조성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6호기를 끝으로 국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백지화됨에 따라 국내 원자력 공급망(supply chain) 유지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부가 국내 신규 원전의 대안으로 내놓은 해외 원전 수출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급망 유지를 위한 대책으로 ‘원전 관련 업체의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일 원자력계에 따르면 원전 관련 업체가 기자재 공급, 정비, 해체·제염 등 원자력 산업의 전 주기에 걸쳐 사업 다각화에 나서는 것이 공급망 유지를 위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공론화 끝에 건설 재개된 신고리 5·6호기의 기자재 납품은 2020년 마무리될 전망이다. 지난 6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는 천지원전·대진원전 등 신규 원전 4기 건설 사업을 종결했고, 남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도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자재 물량의 흐름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원전 기자재 산업의 특성상 다수의 중소업체가 참여하고 있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을 수주해도 기자재 납품이 시작되는 2025년까지 5년의 공백기가 발생하므로 공급망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7년 원자력산업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원자력 산업에서 중소협력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93%에 달한다.

이 때문에 원자력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원전 관련 업체의 사업 다각화가 거론되고 있다. 원전 기자재 업체가 정비사업이나 해체·제염사업에 뛰어들어, 중소업체를 육성하고 전체 사업 규모를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한마디로 기자재 공급망, 정비 공급망, 해체·제염 공급망을 연계해 하나의 원자력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기자재 공급 업체가 원전 정비업체를 인수하거나 컨소시엄을 통해 사업을 확장한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된다. 이를 통해 그간 업체의 신뢰성 문제로 인력도급 위주로 진행됐던 정비사업 발주방식도 물량도급으로 전환할 수 있고, 기자재 업체와 컨소시엄 등도 정비물량 확보가 가능하다는 복안이다.

기자재 업체가 유망시장으로 평가받는 해체 산업에 참여하는 방법도 사업 다각화의 여러 안 중 하나다. 지난해 6월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국내 원전 해체 시장이 열렸다. 향후 2030년대까지 국내 전체 원전의 48%가량이 해체될 예정이다. 해체 산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해체 장비 개발은 기자재 업체가 개발한 기자재 부품과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도 해체 산업 육성에 발맞춰 해체 장비 개발 능력을 보유한 기자재 업체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재열 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은 “신규 원전 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기자재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비 공급망, 해체·제염 공급망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며 “이는 원전의 안전 가동을 위해서도 중요하며, 원자력 공급망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 원전 수출이 성공한다면 국내 원자력 산업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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