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박종배 교수
건국대학교 박종배 교수

현재에도 진행 중인 끔찍한 대 폭염은 기상 관측에서만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력수급에서는 냉방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7월 24일 9248만㎾, 역대 최고의 전력 수요를 기록하였다. 뿐만 아니라, 에어컨의 지속적 가동으로 소위 ‘주택용 누진제 폭탄’ 논쟁이 2016년에 이어 재판되고 있다. 이 와중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침 일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이 보장되는 공급약관을 마련하도록 한전에 지적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즉, 지금까지는 공급자가 지정한 검침 일에 따라 한 달 동안 동일한 전력량을 사용한 소비자의 전기요금도 서로 다른 이른 바 ‘복불복 요금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을 곰곰이 살펴보면, 전기, 열, 가스 등과 같은 대부분의 에너지 사용에서 소비자인 우리가 선택할 수 있거나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거나 매우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소비자의 기능과 역할은 에너지 공급에 따른 요금을 주어진 기간 내에 지불하는 것에 국한된다. 눈을 돌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통신, 항공, 혹은 이와 유사한 상품과 비교해 보면 그 간극이 너무 큰 것에 놀라게 된다.

잠깐 눈을 해외로 돌려보면, 유럽연합, 북미, 호주, 일본 등 주요국의 소비자들이 전력과 열 등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관점과 선택, 그리고 참여 수준은 에너지 공급주의에 익숙한 우리가 볼 때에는 가히 충격적일 수 있다. 좁게는 다양한 판매사업자가 제공하는 수많은 전기요금 표와 방식에 대한 자율적 선택권이 보장된다는 것으로부터, 넓게는 소비자가 에너지 생산에 사용되는 연료(즉, 원자력, 석탄, 천연가스,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직·간접적인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일견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심지어 잉여의 재생에너지를 가진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에게 직접 에너지를 판매하는 이른 바 개인간거래(P2P)가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위 전력의 소비와 거래에서 脫전력회사가 진행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인 몇몇 예를 들어 보면, 자체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어 월간 소비전력을 400kWh 이하로 유지할 수 있는 소비자는 400kWh 까지는 매우 저렴하고 그 이상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비싼 누진제를 제공하는 전기공급자를 찾을 것이다. 이와 정반대인 소비자는 400kWh 이하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쌀지라도 그 이상에서 그다지 높지 않은 요금제를 제공하는 공급자를 쇼핑하여 선택할 것이다. 이와 같이 소비자의 선택이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지역과 국가에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누진제 파동이 원초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우리의 누진제 파동은 ‘전력과 에너지의 획일주의’로부터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소비자가 전력 구매 행위를 통하여 에너지 믹스를 결정하는 것은 선거에서 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과 별반 다른 점이 없다.

우리에게는 머나먼 남의 이야기와 같은 소비자의 직·간접적인 에너지 시장 참여는 매우 당연한 시대적, 역사적 귀결로 이해된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변화의 출발점은 지배력 확대, 비용 최소화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에너지사업자의 전통적 가치와 환경에 대한 높아진 인식과 에너지 믹스 결정에 직접 참여를 원하는 소비자의 비전통적인 가치의 정면 충돌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태양광, 풍력과 같은 소규모 자본으로도 에너지 사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분산 기술의 혁신적 발전,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로 실시간 정보 획득과 공유, 에너지 거래 플랫폼의 등장과 같은 기술 혁신이 바탕이 되었다.

우리는 과거 열량 중심으로 농식품과 식단을 바라본 적이 있지만, 현재에는 인근 공동체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품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전력과 에너지 소비를 열량 단위의 현재 비용과 가치에 집중을 할 것인가, 혹은 아직은 완전히 내재화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소비자가 우선 반영하여 에너지 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것인가? 이질문에 대한 선택은 개개인이 찾아야 할 것이지만, 에너지 산업은 적어도 이를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은 제공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변화를 미룰 수 없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