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며칠 전 한국전력공사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가뜩이나 탈원전 정책으로 위축된 국내 원전산업의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행히 산업통상자원부는 영국 정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협상의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한전과 도시바가 기존의 발전차액 보전방식(CFD: Contract For Difference) 대신 규제자산 기반방식(RAB: Regulated Asset Base)을 적용하는 타당성 조사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영국의 에너지전환정책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국은 근해의 풍력자원이 좋아서 풍력발전이 유망하다. 자연조건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를 위해 예비발전기(Backup generator)로 원자력발전을 택했다. 왜냐하면 영국은 ‘이산화탄소 순배출 제로(Net Emission Free) 정책’을 택했기 때문에 예비발전기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야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국 정부의 원전건설 정책을 보고 아레바, 히타치, 그리고 도시바가 부지를 구매하고 원전사업허가를 받았다. 선두주자인 프랑스 아레바가 추진하는 힝클리포인트 원전사업에 대해 영국정부는 메가와트시(MWh)당 92.5파운드의 전기 값을 약속했다. 영국은 전력사업을 민영화했기 때문에 가격조건을 통해 건설여부를 민간업자와 협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가격은 영국 내 전력가격이 MWh당 30파운드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으로 높아 보인다.

이러한 여론에 따라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추진하는 후속사업에 대해서는 전력가격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히타치는 영국사업을 포기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위하기도 했다.

한편 도시바사는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으로 인해 원전건설사업에 손을 떼기로 결정하고 영국 사업인 뉴젠을 매각하면서 한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도시바는 한전과의 협상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100여명의 직원을 감원했다는 소식도 있다.

한전이 우선협상자 지위를 상실한 것은 도시바가 한전만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몇 가지 짚이는 것이 있다. 첫째, 가디언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탈핵정책과 한전 사장의 교체가 이유로 꼽힌다. 영국은 히타치 사장과 메이 총리의 면담 후 원전 건설비 절반을 자본투자하기로 했다는데 우리는 열심히 영국사업하겠다는 조환익 사장을 영국 다녀온지 이틀만에 교체해 버렸던 것이다. 둘째, 조환익 사장의 이임사에도 나타난 바와 같이 한전은 적자회사가 돼 버렸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정책의 지속성을 국제사회가 믿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원전수출에 관한 자세다. 현재 우리가 수출을 추진하는 방침은 우선 영국이 CFD건 RAB건 한전의 투자에 대해서 어떤 가격보장을 해줄 것인지 확인하고 기획재정부의 예타심사를 거쳐서 타당하면 도시바와 뉴젠에 대한 매수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정부는 아직까지 히타치에 대해서도 가격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즉 우리정부가 이 시나리오대로 수출을 추진한다면 도시바는 기약 없이 기다려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RAB 모델 사업 적용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한다는 것은 아직 RAB 모델로도 확정된 것도 아니다.

넷째, 선행기업인 아레바, 히타치, 도시바 모두가 사업을 추진한 방식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격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투자를 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조심스럽다. 안전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고 작은 나라에서 타당한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향후 160기 이상의 세계 원전시장이 열린다는 사실, 우리나라는 원전수출경험이 UAE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트랙레코드를 쌓아야 한다는 사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하여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고 우리가 UAE에서 보여준 성과를 본다면 조금 더 적극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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