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호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서울대 교수)
홍종호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서울대 교수)

대학 시절 학부에 이어 경제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다. 가르치고 연구하는 업은 어릴 적 꿈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보람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경제학 분야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다. 사회적 수요가 있는 분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다. 기껏 공부했는데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우울한 일이겠기에. 당시로서는 비교적 생소한 전공인 환경에너지 경제학에 관심이 갔다. 학위를 마칠 당시 환경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증하면서 내가 전공한 분야를 찾는 곳이 생겨났다. 감사한 일이었다. 교육과 연구는 교수로서 내가 해야 할 본분이고 보람 있는 일이었기에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세상과의 갈등이었다. 세상을 보는 나의 학문적 프리즘이나 가치관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환경세나 에너지세가 제대로 도입되지 않아 답답하다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 수용이 어려운 정책 대안이니 계속 연구하고 주장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라고 자위하면 됐다. 하지만 수십조 원에 달하는 국민 세금이 국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엉뚱한 데 쓰이는 상황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시대착오적이고 경제적 가치는 없는데다가 환경파괴까지 수반하니 최악이었다. 이런 사업들을 강행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5년 간 비판과 반대의 시절을 살았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든 건 스스로 이겨내면 됐지만, 혈세가 낭비되고, 국토와 강이 망가지며, 공기가 나빠지는 건 고통이었다.

그러다 비판과 반대를 넘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나서게 됐다. ‘에너지전환’은 나를 포함해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염원하는 많은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 시민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한국경제를 보며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화석연료 전부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제조업, 서비스, 건물, 교통 전 분야에 걸쳐 이처럼 펑펑 에너지를 소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전 세계는 가히 재생에너지 혁명이라고 말할 정도의 산업구조 변화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무얼 하고 있나. 동력자원부는 오래 전 상공부와 합쳐지면서 독립된 에너지정책은 실종된 지 오래고, 산업경쟁력 확보란 미명 하에 값싼 에너지를 풍부하게 공급하는 일이 유일한 정책 근간이 되다니. 에너지전환 정책이 이런 답답함을 해소하고 커다란 방향 전환의 길을 열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에너지전환은 정부 정책의 변화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한국사회와 한국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 모두의 인식과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경제시스템을 넘어 문화와 가치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긴 호흡으로 인내심과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반발과 저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은 거부할 수 없는 메가트렌드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의 위협에 직면하는 시대이자, 화석연료의 종말을 점치는 미래학자가 넘치는 세상이다. 땅은 좁고 인구는 많은 이 나라 어디에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소를 쉽게 건설할 수 있겠는가. 공기 나쁘다고 불평하면서 너도 나도 마이카를 외치며 자동차 과잉사회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됐다. 세계적인 거대 흐름과 대한민국이 처한 지리 환경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세상과 나를 바꿔 가는 일에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에너지전환의 대장정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 신호를 일관되게 시장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시설과 풍력단지가 들어설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정책 성패가 달려 있다. 대단위 계획입지와 주민 상생형 농어촌 입지가 모두 필요하다. 과거 중앙집중형 대형발전소 건설하듯이 위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지자체와 주민을 향한 설득과 소통을 통해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건물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채찍과 당근이 시급하다. 최고의 건물단열을 지향하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정책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이다. 도시에서는 앞으로 경유차 운전하고 다니기 힘들도록 정책설계를 정교하게 해야 한다. 전기차 의무판매제 도입은 어떤가.

에너지전환에 위협을 느끼는 이해관계자가 없을 수 없다. 원전학계와 업계가 대표적이다. 산업화 시대에 원전업계의 역할이 컸다. 물론 정부가 제도와 예산을 수십 년 간 퍼부어준 결과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원자력산업이라는 거대한 독점체제를 둘러싼 부패와 부실이라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탈원전은 망국”이라고 목소리 높이기 전에 자기반성이 먼저다. 에너지전환의 틀 안에서 원전학계의 역할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 역시 상존한다. “재생에너지,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아. 그게 되겠어?”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분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산업화시대의 명언을 들려주고 싶다.

“이봐, 해 봤어?”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