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윤경 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장마라더니 비는 오지 않고 끈끈하기만 하다. 비오는 날은 시원하기라도 하지만 발바닥이 쩍쩍 붙는 축축한 장마는 무엇으로 견뎌야하는지 모르겠다. 태풍도 한 번에 하나씩 순서대로 오더니 요새는 연달아 오기도 하고 중간에 만나서 같이 오기도 한다. 도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두 개 이상의 태풍이 충돌하면서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퍼펙트 스톰 (perfect storm)이라고 한다. 기후현상에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경제위기를 나타내는데도 쓰인다.

에너지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신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생태계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전기, 통신, 자동차 등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누가 누구의 경쟁 상대인지 가리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지붕형 태양광 보급으로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조금 과장해서 보면 이제 모든 분야에서 경계라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과 같은 선진국은 1990년대부터 신재생에너지 확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순차적으로 탈탄소화(decarbonization) 또는 탈원전 등 각 국의 여건에 따라 정책을 도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1년에 발전차액지원제도(FIT; Feed-in-Tariff)를, 2012년에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s) 제도를 각각 도입하고 정책적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아직은 제대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작년부터 탈원전 정책도 구체화되면서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이야 말로 퍼펙트 스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나라들이 신재생에너지와 탈탄소, 탈원전 정책에 익숙해지는데 20년의 시간이 있었다면 우리가 가진 시간은 그에 비해 짧다. 에너지산업에 많은 변화가 몰려오고 있는데 사실은 하나 하나가 낯설다. 소비자가 생산자라는 프로슈머(prosumer)는 그나마 익숙한 편이고 절약한 에너지를 팔수 있다는 수요반응(DR; demand response)이나 중개사업자(aggregator), 실제 존재하는 발전소는 아니지만 발전자원이라는 가상발전(VPP; virtual power plant)도 그러하다. 세계에너지협의회(WEC; world energy council)에서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보고서에 가 있다. 2018년 에너지 산업에서 불확실성이 가장 높지만 시급한 이슈는 탈탄소화(Decarboniz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 분산화(Decentralization)로, 첫 글자를 따서 3Ds로 부른다. 3개의 D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라서 각 이슈를 실행하는 데 다른 항목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탈탄소화를 위한 핵심 요소가 에너지 산업을 디지털화하고 분산화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2017년 이슈가 기후변화체계(climate change framework), 전기 저장(electric storage), 상품가격(commodity price)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여기도 퍼펙트 스톰이다.

미국 미시간에 있는 레이크 슈피리어 주립대학은 2007년에 지나치게 과용되는 단어 가운데 1위가 퍼펙트 스톰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남용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10년이 훌쩍 넘은 오늘도 여전히 인기가 높다. 당장 신문기사 검색만 해도 관세전쟁, 경제, 부동산, 에너지 등 상관없는 분야가 없다. 자주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피할 수 없는 복합적인 혼돈이 사방에서 몰려오니 다들 불안한 모양이다.

변화에 익숙해지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쩌면 우리는 몰려오는 변화를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한 단계 도약하는 저력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그게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불확실한 게임에서 퍼펙트 게임으로 이기기고자 하는 꿈이 과욕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명확히 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