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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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이나 계속된다.

독일의 축구선수이자 감독인 제프 헤어베이거가 남긴 말이다.

전범 국가인 독일은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당하다 10년 만에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당시 독일의 선전을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들조차 패전의 그늘에 휩싸여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독일 대표팀은 절치부심하며 결승전까지 오른다. 결승전 상대는 막강 최강 팀인 헝가리. 헤어베이거 독일팀 감독은 결승전을 앞두고 절대열세를 점치는 기자들에게 축구계 대표적 명언을 남긴다.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이나 계속된다.

독일팀은 모두의 예상대로 경기 초반 헝가리에 2점을 내줬지만 2점을 만회한 뒤 후반 역전골을 넣으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독일 국민들은 이 경기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꿈꿨다고 한다. 이날의 경기는 결승전이 열린 스위스 베른에서 착안해 ‘베른의 기적(The Miracle of Bern)’이라 불리고 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우리나라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단 한 장뿐인 아시아지역 출전권을 획득하고 월드컵 본선무대에 처음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은 경기를 불과 10여 시간 앞두고 스위스에 도착했다. 직항이 없어 48시간동안이나 비행기를 타며 이동했기 때문에 극심한 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등번호조차 없었다고 하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헝가리와 0대 9, 터키와 0대 7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도전은 계속됐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연속 9번째 본선에 진출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4강의 신화를 이뤄냈다.

스포츠는 승리하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 포함된 말 그대로 ‘죽음의 조’에 속했다. 한국이 이들 3개국에 비해 전력에서 열세라는 건 전 세계 축구 전문가들의 일관된 의견이었다. 그런데도 막상 뚜껑이 열리자 국민들은 마치 받아야 할 돈이 있는 사람처럼 너무나 당당하게 승리를 요구한다.

한국 대표팀이 1차전에 이어 지난 24일 열린 멕시코와의 2차전에서도 패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특정 선수를 비난하는 악의적인 글이 쇄도했다. 그 선수의 부인 SNS에도 도를 넘은 악성 댓글이 넘쳐났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국민이자, 세계문화를 주도하는 한류라는 어마어마한 자산을 가진 문화 선진국 국민이지만 스포츠와 관련해서는, 특히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인격적인 모습이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위로를 받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국가대표팀 선수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남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대한민국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3차전 독일과의 경기를 2대 0으로 승리해 월드컵 역사에서 독일을 꺾은 최초의 아시아 국가로 기록됐다. 역시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이나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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