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 양도 받지 않은 사용후핵연료 무단 도용
전문가 “외교문제로 번질수 있는 중대사안” 우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부터 소유권을 양도받지 않은 사용후핵연료를 듀픽(DUPIC) 시험에 무단 도용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해 원자력연구원이 방사성폐기물을 무단 처분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원자력연구원의 도덕불감증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31일 전기신문 취재결과 원자력연구원은 지난 2000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조사재시험시설(IMEF)의 M6 핫셀(듀픽핵연료 핫셀, DFDF)에서 실시한 DUPIC 시험에 총 23.77㎏의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2004년과 2006~2016년 시험에서 한수원이 양도하지 않은 사용후핵연료가 사용됐으며, 특히 2010년과 2014~2016년 시험에서는 한수원의 사용후핵연료만 사용됐다.

DUPIC은 ‘경·중수로 연계 핵연료’(Direct Use of spent PWR fuel In CANDU reactors)의 약어로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평화적 핵연료 재처리 기술이다. 경수로의 사용후핵연료를 재가공해 중수로 핵연료로 제조하는 데 이용된다.

문제는 원자력연구원이 양도를 받지 않은 사용후핵연료를 본래 연구목적과 다른 시험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원자력계 전문가는 경우에 따라 핵확산 방지에 관한 국제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 관계자는 “KINAC은 원자력 통제 기관으로 해외 국가, IAEA와의 협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기관”이라며 “원자력연구원이 관련 시험에 대해 통보하지만, KINAC은 시험 내용이 아닌 계량관리 체계를 점검한다”고 말했다.

KINAC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 문제가 KINAC의 업무도 아니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업무도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원안위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하나로 등 원자력안전 시설에 대한 허가 및 규제를 담당하고 있다”며 “사용후핵연료 사용목적 등 연구 관련 내용은 원안위의 원자력 안전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은 1987년 4월부터 2013년 8월까지 고리, 한빛, 한울 등 원전에서 사용후핵연료를 ▲핵연료 연구개발 ▲국산핵연료 성능검증 ▲손상 핵연료 원인 분석 등을 위해 총 21회 운반해왔으며, 현재 사용후핵연료봉 1699개를 보관하고 있다. 한수원은 이중 1351봉을 원자력연구원에 양도했으며, 나머지 348봉은 한수원 소유로 원자력연구원 내 보관 중이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능 반감기가 10만 년이 넘는 고준위방폐물이기 때문에 이송 시 ‘방사성물질운반검사 신청서’, ‘방사성물질 등의 운반신고서’, ‘방사성물질반출기록부’(RMSR)에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수원이 양도하지 않은 사용후핵연료의 연구목적은 ▲사용후핵연료 손상원인 규명 ▲사용후핵연료 조사후시험 및 평가 ▲고연소도 사용후연료의 특성규명을 위한 조사후시험 등이다. DUPIC 시험에 관한 내용은 전무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자력연구원이 이 문제에 관해 통보하지도 않았고, 인지하지도 못했다”라며 “원자력연구원이 국가적인 연구목적을 갖고 시험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는 한수원과 원자력연구원 어느 한 쪽의 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소유권 개념이 없다”고 해명했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또 “한수원에서 원자력연구원으로 이송된 사용후핵연료는 양도·양수된 경우와 용역계약을 한 경우로 구분된다. DUPIC 시험과정에서 저연소도 사용후핵연료봉 7개와 고연소도 사용후핵연료봉 7개를 사용했는데, 고연소도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용역계약으로 이송됐기 때문에 양도·양수 서류를 갖추지 못했다”며 “소위 ‘한수원 소유’라고 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본래 연구목적인 ‘손상원인 규명’을 완료한 상태였고, 시험 과제 계획에 핵물질 사용을 기재해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건설되면 원자력연구원 내 사용후핵연료를 반송할 계획이었지만,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며 “기한 없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험에 필요한 고연소도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하게 됐다. 이 문제는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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