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서 영향 받은 엄격함・절제된 흑백 수녀복
그녀 특유의 심미안과 남다른 디자인으로 탄생

19세기나 20세기 초반 무렵에는 귀족의 딸들이 성당의 기숙사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고 한다. 그런 교육기관을 겸한 성당의 보육원에서 자라는 고아들도 18살이 될 때까지 똑같은 교육을 받고 수녀로 서원하면 수녀원에 남고 수녀로 서원을 하지 않으면 고아원으로부터 독립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가브리엘 샤넬이 고아임에도 어떻게 프랑스나 영국 귀족사회에 진입이 가능했을까가 미스테리였었는데 이번에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는 있으나 방치된 상태로 자란 아이보다 고아나 다름없지만 성당이라는 교육기관에서 철저하게 교육받고 홀로서기를 배운 가브리엘 샤넬이 훨씬 더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세상만사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재앙도 슬퍼할게 못 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중국의 사자성어다. 중국의 변방에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 나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 하였는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와 마을 사람들이 축하했다.

말타기를 좋아한 그의 아들이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자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그를 위로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마을의 젊은이들은 싸움터에 불려 나가 대부분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을 타다 부상당하여 절름발이가 되었기 때문에 전장에 나가지 않았고 죽음을 면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샤넬이 아버지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면 설령 유명한 사람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절제되고 미니멀한 디자인 세계. 그것은 20세기 초 사회환경에서 일반적인 사람이 추구하는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당시 수도원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그녀를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눈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시대적 배경도 그녀를 빛나게 도와주었다. 세계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산업 사회가 급격히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난 것도 그녀의 편이 되어주었다.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높아지면서 샤넬은 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디자인을 제안하게 되고 특히 수녀원에서 자라면서 영향받은 엄격함과 절제된 흑백의 수녀복은 그녀 특유의 심미안과 남다른 디자인을 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한 것 같다.

한국에서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이 좌절하는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핏팅모델 사이즈의 몸을 갖고 있느냐와 청소년기에 어디에서 성장했느냐다. 대부분의 패션회사에서는 같은 값이면 핏팅모델 사이즈를 가진 신입 사원을 뽑아 핏팅모델부터 시키며 일을 시작한다. 학생의 입장에선 왜 대학을 졸업했는데 핏팅모델로 스타트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겠지만 패션을 학문으로 공부한 졸업생이 당장 입사해서 시킬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패션에서 중요한 감각과 안목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서 성장했느냐 하는 것도 패션계에 첫발을 딛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것이 수천명이 출발해서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1퍼센트 남짓이고 나머지는 중도 탈락한다. 패션디자이너라는 치열한 세계에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선 부모의 과잉보호와 관리 속에서 자라서는 답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가 가브리엘 샤넬의 삶을 디자이너적 시각과 관점에서 재조명 해보고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막연하게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어린 후배들을 위한 생각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틀즈의 멤버 중 한사람인 폴 메카트니의 딸로 태어나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한 ‘스텔라 메카트니’의 성공 스토리를 이야기 하고 싶다. 폴메카트니와 포토그래퍼인 린다 메카트니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스텔라 메카트니는 1997년 26살에 ‘클로에’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로 스카우트 되어서 전세계 패션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모두들 폴 메카트니의 딸이라는 요소가 ‘쇼비지니스 세계’와 긴밀한 관계에서 빚어진 헤프닝 정도로 보았고 특히 클로에를 성장시킨 ‘칼 라거펠트’가 그녀의 스카우트를 가장 황당하게 여겨 한때 온 세계 패션계가 떠들썩했던 에피소드다. 하지만 그녀는 보란듯이 클로에를 재도약시켜 패션계의 기우를 짧은 시간에 잠재웠다.

여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우리가 알고있는 스토리이지만 그녀가 런던의 ‘새빌로우 스트리트’에 있는 테일러 장인 아래서 일년이 넘게 남성자켓의 전통 테일러공정을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습득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셀럽이었던 그녀가 런던의 양복기술자 밑에서 바느질을 배운다고 하면 한국의 부모들은 듣기만해도 펄쩍 뛸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테일러링 공방이라고 해도 우리의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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