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철도 관심 높지만 북한 인프라 열악해 과제 多
장기계획 수립·실무 협의 등으로 이행 가능성 높여야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장소인 판문점 평화의집에 방문한 뒤 이 같은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2007년 정상회담 이후 사실상 단절되다시피 했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직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역사적인 이날 남북정상은 남북 간 철도를 연결하고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해서는 통합된 교통 인프라망을 구축하고, 종국에는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의 반영이다.

큰 틀에서는 북방철도 사업을 추진할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수립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일차적으로 북한철도의 현실이 우리의 예상보다도 열악하고, 실제로 사업이 이뤄지기 위해선 양국 정상 간의 합의를 넘어서는 실무적인 협의가 필요해서다. 지금부터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미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북한의 철도 인프라 상황은 어떤 수준일까. 또 우리의 준비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앞으로 어떤 사업들이 당면 과제로 부상하게 될까. 대전환을 앞둔 남북철도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한발 먼저 들여다봤다.(편집자 주)

◆북한철도는 지금=북한의 교통망은 철도를 주간선으로 도로교통이 보조간선 역할을 수행하는 ‘주철종도’의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산악지형이 많은 특징적 요인이 철도에 대한 의존도를 끌어올린 것이다.

그러나 철도가 차지하는 높은 비중에 비해 북한 철도 인프라의 현실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북한의 전체 노선은 총 5456km로 남한의 4197km보다 규모가 크다. 전철화율은 80%에 달해 높은 수준이지만, 열차 운행 효율성과 직결되는 복선화율은 3%에 불과해 48.8%를 달성한 남한과 대조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노선의 노후화다. 북한의 주요 노선 대부분은 1930년대에 구축됐다. 가장 오래된 판문~평양 구간 평부선, 평양~신의주 구간 평의선의 경우 1906년에 부설됐다. 규모가 큰 노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총연장 784km의 간리~라진 구간 평라선은 1945년, 324km의 청암~라진 구간 함북선은 1935년에 부설됐다. 이 노선 대다수가 TSR 연계 시 통합 노선에 포함된 터라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아울러 북방철도 연계와 관련해 궤간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철도가 북한을 지나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운행하기 위해서는 철도 궤도의 폭이 다른 러시아 국경에서 환승이나 환적을 해야 한다. 한국·중국·유럽 철도는 표준궤(1435mm)이고, 러시아철도는 광궤(1520mm)로 궤도의 폭이 85mm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상이한 궤간에 대해선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경우에도 앞서 개발한 TSR 연계용 궤간가변대차의 시험을 위해 러시아철도연구원(JSC VNIIZHT)과 철도 연구개발·기술협력 MOU를 체결하는 등 밑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 외의 노후화 개보수·현대화 사업 등 핵심 사업과 관련해서 아직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기관 관계자는 “오랜 관계 단절로 인해 북한철도의 정확한 현실을 파악한 자료는 없는 상황”이라며 “북한에 직접 방문했던 전문가들로부터 전해진 단편적인 정보들뿐이 없는 터라 본격적으로 사업이 논의되면 현황조사가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고속철도망 구축 선결과제는=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철도 연계의 핵심 과제는 고속철도망 구축이다. 노선의 복선화, 전철화는 고속철도망 구축의 선결과제이며, 더 중요한 과제는 실제로 동북아 권역을 ‘1일 생활권’에 편입시킬 수 있는 ‘속도’를 확보하는 것이란 얘기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유라시아 고속철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기초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고속철도는 항공 대비 800km 이내에 한해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현재 한반도에서 동북아 권역으로 철도를 연결할 시 경쟁력을 가지는 구간은 중국의 북경,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까지다.

서울을 기준으로 할 때 800km는 중국 동북지역의 단둥, 선양, 창춘, 다롄이며, 한반도 북단인 신의주를 기준으로 할 시엔 베이징·하얼빈, 나진 기준으로는 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가 연계 효율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바탕으로 분석된 북한지역 고속철도망 구축 우선순위는 ▲평부선(평양~판문) ▲평의선(평양~신의주) ▲평라선(간리~라진) ▲강원선(평강~고원) ▲청년이천선(평산~세포)·금강산청년선(안변~감호) ▲함북선(청암~라진) ▲만포선(순천~만포) 순이다.

특히 타 국가의 고속철도 노선과 연계성을 감안하면 평부·평의·평라선의 우선순위가 높다.

평부선의 경우 경의선·평라선과 직결을 통해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계가 가능하며, 평의선도 경의선·TCR 연계가 가능한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평라선의 경우에는 남한의 동해선과 연계해 향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계가 가능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북한 고속철도망 구축 시 북한의 경제·사회적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같은 보고서에서는 북한 철도망 구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요소로 ▲북한의 경제 자생력 제고 ▲통일 대비 한반도 균형발전 등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철도 연계만을 위해 노선을 구축하기 보다는 향후 고속철도 노선을 중심으로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경제 자생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노선이 계획돼야 하며, 향후 남북한 통일까지 전제함으로써 종합적인 국토마스터플랜과 계획을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방철도 위한 밑그림, 실무 협의와 한반도 리스크 최소화=북방철도 연계가 실제로 추진되기 위해선 사업의 현실성을 확보할 조건들을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 조건 중 하나가 장기적인 계획 이행을 위한 선제적인 실무 협의다. 철도산업의 특성상 노선 신설에는 계획수립부터 완공까지 최소 8년 이상이 소요된다. 밑 작업 없이 문호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경쟁력이 높은 해외 철도업체들에 시장을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중국의 경우 수년 전부터 북한에서 철도산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철도공단·코레일·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국내 주요 철도기관들은 남북철도 전담 조직을 신설해 계획 수립에 나서고 있지만, 북한 측과의 협의는 이뤄지지 않아 성과를 내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밖에 철도사업에서 남북관계의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간 대북사업의 경우 남북, 북미 간의 정치·외교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잦았던 만큼 이를 방지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앞서 정상회담 직후 남북철도 사업 담론은 최대 호황기를 맞았으나, 당초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고위급회담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정체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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