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불문 ‘워라밸・저녁있는 삶’ 좋은 직장의 요건 ‘공감’

몇 년 전 ‘세대공감 올드앤뉴(Old & New)’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청소년들이 모르는 어른들의 말과 어른들이 모르는 청소년들의 말을 서로 알아맞히는 것이었는데,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히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이처럼 세대 간에는 언어는 물론, 생각과 가치관 등도 크게 다르다. 자라난 환경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 후 특수를 누린 베이비붐 세대가 서서히 은퇴를 시작하고, 자유분방한 신세대들이 입사하면서 공기업 문화에도 세대의 전환이 일고 있다. 정년을 목전에 둔 남동발전 영흥발전본부의 우광호 처장과 인턴으로 입사한 최나리 사원으로부터 달라진 공기업 문화에 대해 들어봤다.

‘공기업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기 직장’

▲우광호 처장= 1960~1970년대만 해도 한전 등 공기업은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그때는 기업체가 별로 없다보니 정부와 한전, 은행을 선호했고, 선배들의 스펙도 매우 높았습니다. 물론 제가 1984년 한전에 입사할 당시에도 공기업에 대한 이미지나 위상은 매우 좋았어요. 특히 한전마크가 박힌 복장을 입고 있으면 외상도 쉽게 되고, 최고의 사윗감으로 꼽혔죠. 다만 급여가 대기업보다는 훨씬 적었어요. 저도 한전과 대기업 2곳 정도에 동시에 합격을 했는데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공기업을 택했죠. 돈도 좋지만, 과도하게 조직과 일에 얽매이는 사기업보다는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데 유리할 것 같았거든요.

▲최나리 사원=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익실현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자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대학 때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시공부를 좀 하다가 졸업과 동시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NGO단체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하게 됐죠. 그때 우연히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에너지산업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높은 연봉보다는 고용안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에너지 공기업 입사 준비를 시작했어요.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원하는 공기업에 입사하게 되니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사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부러워하더라고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공기업 문화도 바뀌어’

▲우광호 처장= 30년 전과 비교해보면 공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었어요. 근데 이는 공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예전에는 사무실뿐만 아니라 버스에서도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잖아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여서 굳이 과거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 결과를 봤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이 상사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회식하자”라고 하더라고요. 과거에는 선배가 맛있는 고기 사준다고 하면 좋아했었거든요 (헤헤). 이런 분위기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후배가 일을 좀 못해도 선배가 정(情) 때문에 점수를 잘 주곤 했는데, 이제는 냉정하게 평가를 하려는 분위기여서 젊은 직원들 스스로 엄격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거든요. 앞으로 인사평가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고, 더 이상 공기업도 정년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 고용의 유연성 같은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나리 사원= 외부의 시선에서 봤을 때 사기업에 비해 공기업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3개월 남짓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예상보다 그리 수직적인 문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율출퇴근이 가능한 유연근무제가 보편화돼 있고, 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하더라고요. 사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다른 회사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긴 하지만, 상사 눈치 보느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서 부럽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해요.

‘과거에는 가정보다는 일 중심...이제는 워라밸이 좋은 직장의 요건’

▲우광호 처장= 30년 전과 비교해 요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성장의 정체와 불안성의 확대가 아닌가 생각해요. 과거에는 기업들이 굉장한 속도로 규모를 키워가던 시기여서 조직에서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 개인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1980년대만 해도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올인했던 시기여서 요즘처럼 다양한 근로조건이나 가족, 인간적인 가치 등에 대한 관심은 적었어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직장이란 안정성에 더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인간다운 생활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라는 기준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도 열심히 했지만, 회사와 성당에서 합창단으로 활동도 하고, 마라톤을 취미로 해서 풀코스 50회, 울트라마라톤 5회 완주도 했죠. 또 가수 송창식 전국 팬클럽을 결성해 초대회장도 맡고, 한국공인전자상거래사협회도 설립해 초대회장을 맡는 등 개인적으로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선배들로부터 공기업과 맞지 않는 체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죠. (하하)

▲최나리 사원= 공기업이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안정적이고,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는 점이에요. 저희 남동발전에도 다양한 동호회와 문화교실이 있는데, 저는 회사 문화교실 중 ‘뜨개’ 수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나름대로 제게는 굉장히 큰 도전이었는데, 지금은 퇴근 후 집에서 하는 뜨개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죠. 무지한 분야에 새롭게 도전해본다는 점에서 제 나름대로는 보람 있고, 또 함께 뜨개 수업하는 선배 직원들과 친목도모를 할 수 있어서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기업의 복지부동은 경계해야’

▲우광호 처장= 저는 한전의 명실상부한 1호 해외사업이었던 필리핀 650MW 말라야화력 인수복구 운영사업의 원년 멤버로 참여하고, 발전회사 최초의 대형 해외신재생에너지 발전 프로젝트인 불가리아 42MW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주도한 게 34년 직장생활 중 가장 보람된 일로 기억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대형 터키 압신엘비스탄 석탄화력 프로젝트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프로젝트가 성사되지 못한 것이죠.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달랐던 거죠. 그런데 공기업이란 게 결과가 좋아도 인센티브는 별로 없고, 결과가 안 좋으면 징계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이 복지부동하는 경향이 많다는 겁니다. 고의나 중대한 실수에 의한 실패는 엄중히 벌해야겠지만, 직원들의 실패에 좀 더 관대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최나리 사원= 간부로 승진하면 지방으로 옮겨 다녀야 해서 선배들이 승진시험을 많이 안 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희 동기 중에도 가족과 떨어져 살지 않으려고 승진시험을 안 볼까 하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여유로운 삶도 중요하지만, 승진도 직장생활에 있어 하나의 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목표와 도전계획’

▲우광호 처장= 현대는 평균수명이 기본 90세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와 배우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현재 임금피크제 기간인데 신재생에너지 태양광기사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고, 색소폰연주자가 되기 위해 사이버대학 실용음악학과에서 색소폰도 배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내와 미국 50개주를 1년간 자동차로 일주하는 계획도 세워 뒀죠. 다녀와서는 멋진 책을 쓰려고 합니다. 다소 허황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처음에는 모든 꿈들이 얼핏 그렇게 보이지 않나요? (헤헤)

▲최나리 사원= 이제 갓 입사해서 아직 미래를 위한 계획보다는 당장 제 업무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현재 영흥발전본부 총무부 복지파트에서 근무 중인데 앞으로 직원들의 복리후생 향상을 위해 원데이클래스나 문화강좌 같은 양질의 프로그램 기획업무를 해보고 싶어요. 대부분의 발전소는 오지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직원들이 문화생활이나 여가생활을 즐기기에 많은 제한이 있거든요. ‘저녁 있는 삶’이 ‘저녁만 있는 삶’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 우리 직원들의 복리후생 향상을 위한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후배와 선배에게 하고 싶은 말’

▲우광호 처장= 무엇보다 직장 내의 에티켓이 중요해요. 술 매너(주도)도 중요하고, 겸손, 노력 등도 평생 간직해야 할 화두예요. 업무적으로는, 직무선택 시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기술직의 경우 터빈과 보일러 등 소위 메인 분야에 집착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오히려 신재생, 환경, 안전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면 퇴직해서도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거든요. 또 좌우명을 갖고 살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어휘력을 높이려면 한자 공부도 하면 좋고, 악기 하나쯤은 다루는 것도 인생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최나리 사원= 이제 막 근무를 시작한 꼬꼬마 신입사원이라 분명 부족한 부분도 많고 실수도 잦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도 선배님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저 또한 선배님들의 조언을 항상 새겨듣는 초심의 자세로 업무에 임하겠습니다.

▲우광호 처장은...

1984년 한전에 입사해 외자처, 원자력발전소, 뉴욕사무소, 마닐라사무소 등 대부분 해외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다. 2001년 남동발전 분사 이후에도 신성장동력실장, 이스탄불사무소장, 영흥발전본부 처장 등을 역임했다.

▲최나리 사원은...

2018년 2월 남동발전에 입사해 4주간의 연수를 마치고 현재 영흥발전본부 총무부 복지파트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새내기 신입이다.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은 첫 번째 비결로 ‘스터디’를 꼽았다.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환경 속에서 스터디를 통해 강제성 있는 생활을 하며 공부리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우광호 남동발전 영흥발전본부 처장
우광호 남동발전 영흥발전본부 처장
최나리 사원
최나리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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