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갑질(Gapsil)’이라는 단어가 외국사전에 등장했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갑질은 ‘사용자와 근로자’,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모님과 운전사’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악습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에서는 그런 상황을 표현할 단어가 마땅치 않자 우리나라의 ‘갑질(Gapsil)’이라는 표기 자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요즘 원성을 사고 있는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촉발된 대한항공 오너일가의 갑질을 보면 너무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부끄러움을 넘어 분개(憤愾)를 느낀다.

조 전무는 광고대행 업체와의 회의에서 물이 든 컵을 던진 ‘물벼락 갑질’과 막말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의 언니인 조현아 사장은 지난 2014년 기내에서 승무원이 마카다미아를 서비스 매뉴얼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난동을 부려 법의 심판을 받았다.

조 전무의 오빠인 조원태 사장 역시 공무집행 방해 혐의와 할머니 폭행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들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역시 수행기사와 직원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증언과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지난 23일에는 이명희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폭행‧폭언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양호 회장 일가의 명품 밀반입과 조 전무의 불법 경영권 문제, 이명희 이사장의 폭행사건은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범죄행위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2일 조현민 전무의 갑질 사건 사과와 함께 두 딸을 모든 직위에서 사퇴시키고, 전문경영인 신설, 준법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 경영 쇄신안을 내놨다.

이튿날에는 준법위원회 위원장에 외부인사면서 헌법재판관 출신인 목영준 김앤장 사회공헌위원장을 위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그룹의 시스템 정비만으로 오너 일가의 갑질을 막을 수 있을까.

한진그룹의 이번 조치는 누가 봐도 ‘내리는 비만 피하고 보자’는 임시방편(臨時方便)에 불과하다.

조 회장은 전문경영인 신설, 준법위원회 구성 같은 거창한 계획 대신 본인과 아내, 그의 자식들을 호되게 꾸짖고 회초리를 드는 게 먼저다.

갑질은 조직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의 인성(人性)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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