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혁 한전경제경영연구원 신산업연구팀장
박민혁 한전경제경영연구원 신산업연구팀장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홀로 상경하던 이른 봄날, 플랫폼에 서서 아들이 탄 기차가 사라질 때 까지 흔들던 아버지의 갈라진 손과 낡은 구두가 그것이다. 당시 나에게 플랫폼은 단순히 열차를 타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꿈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출발점이었고, 아버지에게는 장남이 사라질 때 까지 구두코의 방향을 돌릴 수 없었던 아쉬움의 끝판이었다. 물론 아들은 그날 낡은 구두의 코가 만들어 낸 플랫폼에서 무언의 격려를 일상에서 잊은 적이 없으며, 이제 그 플랫폼이 진화하여 일터인 에너지산업에서 화두가 되고 있으니 새삼스럽다.

플랫폼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플랫폼은 불특정 다수의 운송업체와 승객간의 서비스 거래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오늘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다양한 사업이 창출되는 실질‧가상 공간이라는 비즈니스적 정의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산업에서 플랫폼이 만들어 내는 비즈니스는 저비용과 고품질의 가치를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제공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소비자 생활양식, 기업 사업운영 형태, 정보와 가치 흐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런 까닭에 해외에서는 에너지 플랫폼을 신산업 구현을 위한 디지털 기반 시스템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지멘스社 사업혁신 컨설턴트 존 쿠퍼는 플랫폼을 “에너지 신산업 확산과 더불어 발생한 서비스에 효율적 접근 및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고객지향의 디지털 기반 운영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있다.

현재 에너지 플랫폼은 4가지 측면의 요소가 변화를 촉진하고 있는데 정책측면에서 재생 확대 및 에너지효율 향상 등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변화가 촉진되고 있고, 기술 측면에서는 ICBM(IoT, Cloud, Big Data, Mobile) 기술발달이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 수집‧분석을 가능케하여 전력공급·소비, 데이터 수집, 통신인프라 구축 및 개별기기와 개인 전력사용 패턴 분석 등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될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시장측면에서는 ‘전력+@’의 기술융합을 통해 전력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이 증가함과 동시에 신기술이 접목된 소비자측 발전‧수요자원의 시장진입 및 BTM(Behind-The-Meter) 형성하고 있다. 또 하나 요소인 소비자들의 관심은 ‘전력사용’에서 ‘전력생산~소비 전 과정’으로 확대되어 수동적 소비자에서 능동적 참여자로 변화가 에너지플랫폼의 진화를 촉진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에 촉진된 에너지 플랫폼 비즈니스는 기술과 서비스가 융합되는 토대 역할을 위해 계층 간 유기적 연계가 중요하며, 전력부문에서 고려할 계층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개별플랫폼으로 설명할 수 있다.

- 서비스 플랫폼 : 고객과의 접점에서 서비스 활동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환경 제공

- 전력망 플랫폼 : 안정적 전기 공급을 위해 전력설비의 운영관리에 초점

- 데이터(공통) 플랫폼 : 디지털 기반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정보 및 S/W 활용 토대

에너지 플랫폼 비즈니스에는 전력사 뿐 아니라 IT, 통신 등 다양한 기업에서 참여하고 있는데 그 접근 방법은 각각 상이하다. 전력사가 전력망 및 고객서비스를 포함한 전 사업영역에서 플랫폼을 활용하여 계통의 효율 향상, 손실 및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통신·소프트웨어사와 같은 비전력사들은 홈 에너지관리 중심의 BTM 영역 플랫폼 개발에 집중하며, 고객의 편의증진 및 플랫폼 이용료(수수료) 취득을 통한 수익증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물론, 전력사는 소유한 전력 인프라가 강점으로 인식되지만, 지난날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구조는 약점으로 평가되고 있으므로 데이터, 전력망, 고객관리, 시장·거래, 에너지서비스에 핵심 가치를 두고 구축 및 운영이 필요하다. 또한 전력사는 미래 계통환경 변화를 고려하여, 새로운 고객니즈를 반영한 플랫폼 기능 구현이 가능한데 과거와 달리 계통운영의 불확실성 복잡성이 증가하였으나, 고객들은 기존보다 높은 수준의 품질과 안정성을 전력공급자(플랫폼 사업자)에게 요구하고 있고 분산형 전원을 보유한 사업자 비율이 확대됨에 따라, 플랫폼 사업자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계통운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이에 미국은 주로 효율화 분야의 수익 증대 및 비용 절감에, 유럽은 신산업 융복합을 통한 사업 선점 및 수익 증대에 목적을 두고 플랫폼에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전력망 플랫폼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사례는 뉴욕의 DSP와 유럽 evolveDSO가 있으며 서비스 플랫폼 비즈니스는 미국 전력회사인 ConEdison, Edison, PG&E 및 유럽 전력회사인 RWE, Engie 활용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에너지 4차 산업혁명으로 전력산업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된 전력산업’과 ‘고객맞춤형 에너지서비스 산업’으로 확대될 전망이고 재편된 전력산업은 공급 중심의 일방향 산업에서 소비자(수요) 중심의 분산형으로 진화되고 있으므로 그 가운데 있는 플랫폼 생태계가 매우 중요하다. 플랫폼은 서비스 구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고객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사업자와 고객이 필요한 인프라, 데이터를 제공하여 부가가치를 제고 가능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데이터의 공유경제를 통해 전력사뿐만 아니라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스타트업들이 꿈을 꾸며 나갈 수 있는 생태계가 장차 에너지플랫폼을 통해 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 어린 시절 낡은 구두가 전해주는 플랫폼의 꿈은 그래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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