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선정된 극단 ‘그린피그’의 연극 ‘공포’가 새로운 한국산 ‘체호프극’의 역사를 써내려갈 전망이다.

연극 ‘공포’는 러시아의 작가 체호프가 황량한 사할린 섬을 여행한 뒤 발표한 동명의 단편소설 ‘공포’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된 연극이다. 소설 속 화자인 ‘나’를 ‘체호프’이라고 설정해 새롭게 구성했다는 게 극단 측의 설명이다.

체호프의 희곡에 버금가는 긴밀한 구성과 대사, 탁월한 극작술이 돋보이는 이번 작품은 한국 연극계가 체호프에게 보내는 오마주다.

1890년 4월, 자신의 문학적 이름이 세상에 막 알려지던 시절의 작가 안톤 체호프는 모든 문학 활동을 접고 유배지인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3개월에 걸친 여정 끝에 사할린 섬에 도착한 체호프는 유형지의 실태를 상세하게 살핀 뒤 8개월 뒤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듬 해 사할린에서의 조사활동에 대한 보고서인 ‘사할린 섬’을 집필한다.

이 여행 이후 체호프의 작품들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적인 연민과 우수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초기작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희극적인 요소가 점점 줄어들고,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는 사회적인 문제와 실존적인 문제에 대한 진지한 모습이 배어들기 시작했다.

체호프의 단편소설 ‘공포’ 역시 그가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온 뒤 발표한 것이다.

체호프의 작품은 늘 인간의 삶과 행동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그가 작품을 통해 드러낸 인간의 삶이라는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시험의 순간을 제공하는 만큼 체호프의 발자취를 살피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큰 의미를 던질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시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끝까지 인간임을 지향하는지 ‘공포’에서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의 지식인이 보여주는 솔직한 인간성이 삭막하게 개체화된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 보여주는 깊은 동정과 욕망을 바라보는 차디찬 이성, 그리고 그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연약함을 그려낸다.

극 속의 등장인물 모두는 삶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진부한 것이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게 죄라면 인간은 어디서 구원받고, 그 죄로부터 어떻게 도망쳐야 할까. 이 작품은 체홉이 고민한 삶의 문제를 그의 희곡에 버금가는 긴밀한 구성과 대사로 풀어냈다.

연극 ‘공포’는 지난해 연극 ‘고발자들’을 통해 우리시대의 내부고발자들의 고통을 그려낸 연출가 박상현이 연출한다. 여기에 창작집단 독에서 활동하는 고재귀가 극작을 맡으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번 작품은 내달 4일부터 1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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