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집을 제대로 짓기 시작한 것은 대략 9천 년 전이다. 수렵시대 끝 무렵, 인구가 늘어 사냥터에 다툼이 빈번해지면 힘없는 자들은 밀려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길목, 수익이 크고 안전한 사냥터는 강한 자들이 소유하게 된다. 힘의 시대에서는 힘이 모자라서, 자본의 시대에서는 자본이 없어서 밀려나는 약자들이 있다.

터키의 아나톨리아는 지중해가 융기한 1000미터가 넘는 고원이다. 바위는 부드럽고 나무는 작다. 동물이 모일 리 없다, 비가 많고 지하수도 좋다지만 큰 강은 보기 어렵다. 물고기도 드물다. 그러니 사냥터로 치자면 변두리다. 이런 곳에서 사냥만으로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해서 여기로 밀려난 자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만 년 전 이곳의 야생밀은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자랐다. 사냥감을 모으지 못해 원망받던 작은 나무들도 밭을 만들 때는 수고가 덜 드니 농사에는 오히려 좋았다. 돌도끼로 큰 나무 하나를 자르려면 일주일도 부족하지만 작은 나무라면 몇 시간이면 된다. 돌칼과 돌도끼만으로도 그럭저럭 밭을 일궈 밀을 키울 만 했다. 박약했던 변두리 사냥터는 농사의 좋은 터전이라 사람들이 늘고, 밭도 점점 더 늘어나고 기술도 향상된다.

집이 중요했다. 사냥과 달리 농사는 집이다. 사냥은 동물을 따라가는 이동의 삶이고 농사는 땅을 따라가는 정주의 삶이다. 하니까 농사를 잘 하자면 천막(shelter)이 아닌 집이 필요해진다. 더구나 사냥은 오늘의 투자로 당장의 수익을 거두는 즉시적 사업이지만 농사란 그렇지 않다. 수 만 평의 들판을 태우고 관목의 뿌리를 솎아야 씨를 뿌릴 수 있다. 철저한 준비다. 아울러 돌도끼로 하자면 엄청난 노동을 투자하는 일이다. 그러고도 6개월 이상을 노심초사해야 다음 해까지 가족을 부양하는 수익이 생긴다. 농사는 리스크가 엄청난 장기투자 사업이다. 그래서 농사를 하자면 집을 제대로 지어야 했다. EPC에서 O&M까지 일관된 경영관리를 지원할 플랫폼이다. (그러고 보면 농사보다 사냥이 훨씬 폼 나고 멋진 일일 듯싶다. 제대로 된 크로마뇽인이라면 헛짓으로 보이는 농사보다야 성과를 당장 확인하고 자랑할 수 있는 사냥을 선망할 것이다. 길목을 잘 지키면 매년 동물은 떼를 지어 지나가고, 가죽도 넘쳐났다. 오히려 힘없는 자들을 사냥터 밖으로 밀쳐내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차탈휘육(Catal Huyuk). 아나톨리아의 중앙부 고원지대에 콘야 평원(Konya Plain)이 에 넓게 펼쳐있고, 그 중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최초의 도시다. 멀리 140km 떨어져 쌍봉 화산인 하산 산(Mount Hasan)이 있어 대략 일주일이면 신석기 시대 최고급 재료인 흑요석을 가져올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숙련된 기술자들이 최고의 석기를 만들었다. 대량 생산된 흑요석 돌도끼와 돌낫은 주변 드넓은 밀밭으로 팔려갔다. 더구나 콘야 고원에서 나는 대부분의 돌들은 무른 석회암이나 응회암이다. 석기를 만들기엔 너무 무른 돌이다. 차탈휘육에서 만드는 흑요석 농기구들은 같은 노력으로 두 세배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으니 수요는 넘쳤을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고도 부자가 될 수 있었다.

9000년 이상 된 차탈 휘육의 집을 발굴하면서, 놀라운 발명 한 가지를 더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벽돌이다. 차탈 휘육의 주민들은 벽을 세울 때 흙으로 만든 벽돌을 사용했다. 차탈 휘육의 벽돌, 그것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인류 역사상 기념비적인 발명이다.

우선, 인공 돌의 발명이다. 벽을 만들 때 사용하는 인공돌이라 벽돌인데 점토를 함유한 흙으로 만들다가 나중에는 모래, 석회 또는 콘크리트 재료로 만들게 된다. 지역, 시간대에 따라서도 종류, 유형, 재료 및 크기가 다양해진다. 차탈 휘육에서 발명된 벽돌은 말린 벽돌이었다. 진흙으로 만들어 햇빛에서 건조했다. 이 진흙 벽돌이 아나톨리아 전역에 퍼지고 메소포타미아와 예리코, 인도 고대문명 지역에까지 전파되었다.

다음이 놀랍다. 벽돌은 인류가 최초로 발명한 디지털화다.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서는 벽돌은 한 손으로 다루기 쉬워야 한다. 충분히 작고 가벼워야 한다. 그래서 벽돌의 폭은 엄지와 다른 손가락들로 편하게 집어 옮길 수 있도록 약 10cm 내외로 만든다. 길이가 너비의 약 두 배 내외로 하고, 다루기 쉬운 무게가 되도록 재료에 따라 두께를 달리 정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벽돌은, 벽을 구성하는 하나의 기본 단위, 즉 비트가 된다. 건축가는 이 기본 단위를 쌓아 넓은 벽면을 만든다. 건축의 3요소라 하는 기능과 구조, 아름다움이 벽돌이라고 하는 비트를 연결해 만들어진다. 나중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둥도 디지털화 된다. 오벨리스크처럼 하나의 돌로 기둥을 만들면 엄청 비싸다. 대신 비트 단위로 잘라진 기본 모듈을 여러 개 쌓아 기둥을 만들면 쉽고 경제적이다.

건축에서 가장 어려운 디지털화는 들보(梁)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해서 지붕을 얹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물.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한 기둥을 연결한 들보들은 거대한 하나의 돌덩어리다. 아름답다지만 기술로만 보자면 원시적이다. 딱, 고인돌이나 스톤헨지에 쓰인 기술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들보를 여러 조각돌로 나누고 이들을 반원형으로 연결하면 아치가 된다. 아치에 쓰는 조각돌은 사다리꼴의 벽돌인데, 이를 사용해 들보(아치)를 만들면 비용도 덜 들고, 연결하는 수를 늘려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원하는 만큼 벌릴 수 있다. 그 사이 공간은 기둥이 없는 대회랑이거나 대신전이 된다. 서양 건축은 들보의 디지털화인 아치로서 완성되고, 그래서 건축은 아키텍처가 된다.

그러고 보면 건축은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 셈이다. 벽돌로 벽을 디지털화 했고, 기둥도 디지털화 했다. 이어서 아치마저 디지털화하면서 서양건축을 대표하는 소위 석조문명을 완성했다. 차탈휘육에서 농업과 함께 발명된 벽돌로 19세기 산업혁명 전까지 집과 도시와 모든 공간이 지어졌던 것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