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 칼럼니스트·스피치디자이너·라온위즈 대표
김수민 / 칼럼니스트·스피치디자이너·라온위즈 대표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을 관람하고 왔다.

지난 주에 출국한 큰 아들도 가족과 함께 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진부한 주제와 평범한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명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빈부차, 가정폭력, 자폐아 문제가 코믹과 감동으로 녹아져 있는 영화였다.

주인공 진태처럼 지적 장애나 자폐를 가진 사람이 특정분야에 몰입해 천재적 재능을 나타내는 것을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한다. 사람은 모두 하늘이 주는 재능과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대부분 개발되지 않는 영역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 영역이란 재능 뿐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어가는 사랑의 능력도 포함된다.

가족공동체는 더욱 그렇다. 영화에서는 폭력가정에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어쩌면 그 울분을 발산하기 위해 복서가 된 전 WBC 웰터급 동양챔피언‘ 조하’가 17년 만에 재회한 엄마를 통해 만난 뜻밖의 이복동생 ‘진태’를 마지못해 돌보며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에서처럼 이 세상은 장애나 가난의 짐을 짊어진 사람만 억울한 것은 아니다.

풍족한 환경에서 모든 것은 누려온 한 부잣집 외동딸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후 피아니스트의 꿈을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레슨 한번 없이 자신의 피아노 연주 유튜브 동영상을 따라하며 실력을 키워온 이 자폐아 소년의 천부적 피아노연주에, 그녀는 절망에서 깨어나고 자신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이 자폐아 소년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에서처럼 우연같은 필연 속에 귀인을 만나 자폐아의 천부적 재능이 피어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다.

개인과 사회, 국가가 공조해야 한다. 우리 엄마도 그랬지만 못난 내 자식을 최고라고 격려해주고 희생하는 부모의 사랑, 사람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는 이웃,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가ㆍ사회의 지원이 있어야 인재도 개발되고 기술도 성장하고 세상이 변화된다.

보통 자폐증으로 불리는 질환의 공식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다. 2015년 기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자폐 환자의 수는 4845명에서 7037명으로 1.5배, 총 진료비는 25억원에서 49억원으로 1.9배 증가했는데 1인당 진료비는 시도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성별로는 자폐증상을 겪는 남성의 수가 여성보다 5.5배 많았고 연령층은 어린이와 10대가 많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미세먼지, 황사, 자동차매연 등 대기오염과 임산부의 장내 세균 등도 자폐아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하는데, 미세먼지 농도가 더 짙어진 요즈음에는 그 피해가 더 심각할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

맹자가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첫 번째 즐거움은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하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것, 세 번째는 천하에 뛰어난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라 했다.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권력을 누리는 것)은 거기에 들어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여류 문필가이자 사회사업가였던 헬렌켈러(1880-1968)는 두 살 때 앓은 열병으로 귀머거리ㆍ소경ㆍ벙어리가 되었으나 그녀를 포기하지 않은 앤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화법(話法)을 배워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녀는 전세계를 순례 강연하며 맹아의 교육ㆍ사회 시설 개선을 위한 기금을 모았고 1937년에는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앤 설리번 선생은 성장과정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고 어머니와 남동생은 그녀가 어릴 적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이미 다섯 살 때 트라코마에 감염되면서 시력상실이 시작되어 큰 고통을 겪었으나 결국 어려움을 이겨냈고, 훗날 헬렌의 분신처럼 변합없는 사랑으로 그녀를 돌볼 수 있었다. 오늘 내가 당하는 고통은 언젠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영화에서처럼, 돈은 없지만 재능을 가진 사람, 돈은 많지만 건강을 잃은 사람, 건강은 있지만 가난한 사람, 가족은 있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 가난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하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사람을 키우고 상생의 영토를 만들어갈 때, 그들만의 세상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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