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산업혁명, 20세기 ICT 혁명에 이은 21세기 바이오 혁명은 각 산업의 융합을 유도하며 복합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 게놈(Genome)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의 유전체 분석이 마무리되면서 인류의 오랜 숙원인 질병 정복의 꿈이 완성되는 듯싶었으나 유전체 분석에 따른 비용이 너무 고가여서 의료 산업 전반에 확산되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최근,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1000달러 유전체분석의 시대가 열렸고 일반 대중의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세계 각국은 빅데이터와 유전체분석을 접목, 활발하게 의료 영역을 노크하고 있다.

단어에서부터 차이가 느껴지는 첨단의학과 전통의학, 첨단의학인 바이오산업과 유전체학, 그리고 전통의학인 한의학 사이에서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유전체의학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산업은 개인 맞춤 의료 시대를 열고 있다. 모든 사람을 같은 잣대로 판단하던 보편주의적 연구방식이 만성질병의 시대에 접어들어 그 힘을 잃어가면서 유전체 분석을 통해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점차적으로 밝혀지고, 이에 따라 개인 맞춤 의학이 점점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한의학은,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체질론의 바탕 위에 세워진 학문체계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치료할 때, 질병을 바라보기에 앞서, 사람의 차이를 먼저 인식하고 개개인의 정기를 도와서 질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부정거사’의 치료법이 치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됐다. 지금도 한의학 하면 ‘보약’이 떠오르는 것은 이러한 학문체계의 영향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 한의학에서 주장하는 체질론은 객관적인 진단과 분류방식의 미비로 인해 뭔가 추상적인 느낌이 강했고, 한의사들 마다 서로 다른 진단 결과를 내리며 불신을 키워왔다.

유전체 분석의 발전은 한의학의 오랜 주장인,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명제를 사실로 증명하고 있다. 물론, 사람의 체질이 네 가지로 나뉜다거나 여덟 가지로 나뉜다는 것은 의학계에서 사실로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명제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기존 의학계를 주름잡던 보편주의적 패러다임이 크나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또한,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활용해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팀에서 사람에 따라 음식물에 대한 반응 양상이 다름을 증명하는 연구 논문을 2015년 세계적 학술지인 ‘셀’지에 발표했다. 데이터마이닝, 유전체의학 등 첨단 산업의 발전을 통해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명제가 사실임이 확고해지고 있다.

빅데이터 처리 기술의 발전과 유전체 분석을 통한 바이오 혁명의 전개를 통해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체질론뿐 아니라 한의학의 여러가지 이론들이 하나하나 증명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바이오혁명의 시대, 한의학에는 크나 큰 위기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매우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감히, 일개 한의사의 신분으로 앞으로 전개될 바이오 혁명의 시대에 바이오와 한의학의 동거를 꿈꿔본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전통과 첨단의 조화, 이러한 조화를 통해 가장 한국적인 의료를 가장 첨단 산업과 접목시켜 세계인에게 선보일 날도 머지않았다고 본다.

글/정요한 하나요양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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