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거버넌스의 문제점

한국가스공사 중심의 수직적 통합구조에 기반한 현행 도시가스산업의 구조와 요금제도의 경직성은 전력시장 가격메커니즘(CBP 체제)의 한계와 맞물려 가스공사로부터 가스를 구입하고 있는 민간 LNG 발전사 다수를 심각한 재무적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원료비 연동제와 총괄원가방식의 경직적 가스요금체계로 인해 이들 발전사들은 낮은 도입가격의 이점을 향유하고 있는 자가소비용 직수입자인 LNG 발전사들에 비해 전력거래소의 급전순위가 밀리고 있다. 현행 산업구조와 요금제도의 경직성은 발전사뿐만 아니라 산업계의 가스수요에 있어서도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산 셰일가스의 생산량 확대에 힘입어 LPG 가격이 하락하자 LPG 업계가 도시가스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산업체의 도시가스수요를 잠식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의 근본원인 중 하나는, 가스공급의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가스공급자의 비용을 가스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도록 한 우리나라 도시가스산업의 구조와 요금제도하에서 가스공급자로서는 LNG 발전사와 산업체 등 가스소비자가 처한 경쟁과 위험을 고려할 방법도 없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데에 있다. 국내 도시가스산업의 구조와 요금제도가 글로벌 LNG 산업구조의 변화와 동떨어진 채로 남아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본 연재를 통해 살펴보았던 것처럼, LNG 시장의 참여자 수, 설비와 거래량, 특히 중단기거래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지역이 분산되면서, 전세계 LNG 산업은 전통적인 특징이었던 폐쇄성과 경직성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산업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하지만, 법률에 의해 독점권이 보장되고 투자비용의 회수가 허용되는 가스공급자로서는 가스소비자의 산업 내 경쟁력 제고를 위해 경쟁적 산업구조를 도입함으로써 자신의 투자를 경쟁과 위험에 노출시킬 필요가 없거나 크지 않다.

이와 같이 현행 도시가스산업의 구조와 요금제도는 위의 문제들을 단지 가스소비자의 문제로 치부할 뿐 그에 대한 어떠한 개선방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방치될 경우 가스소비자들로서는 (LNG 직수입이나 다른 연료로의 대체와 같은) 도시가스 구입 외의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도시가스산업을 급격한 쇠락의 길로 이끌 우려가 있다. 2020년대 중반 가스공사와 한국전력공사 발전자회사 간 계약물량의 대부분이 종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가소비용 직수입제도의 경우, 도시가스산업 내 일부 경쟁요소의 도입이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예상 직수입가격이 가스공사 도입가격 대비 낮을 때에는 LNG를 직수입하고(해당 편익은 해당 가스소비자가 단독으로 누리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가스공사로부터 구매하는 선택권이 가스소비자에게 주어짐(해당 차액은 해당 가스소비자와 기존 가스소비자가 공동으로 부담하게 된다)에 따라 가스공사의 도입가격을 악화시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도입방식은 특히 발전용 연료시장에서 신규 직수입시 마다 기존 발전사의 가스공사로부터의 구입물량 내지 직수입물량을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가스수급에 불안전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자가소비용 직수입자가 가스의 보편적 공급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점에서 자가소비용 직수입제도는 형평성 차원의 문제도 초래한다.

현행 도시가스산업의 구조와 요금제도는 전세계 LNG 산업이 경직성과 폐쇄성이라는 특징을 띠면서 판매자와 구매자 간 장기거래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전통적 사업모델하에서 LNG 구매자가 해외에서 LNG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비용을 들여 인수터미널과 배관망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탱크선을 건설 또는 건조하고 나아가 장기도입계약의 체결을 통해 장기 계약물량의 구입을 보장할 수 있는 신용도를 갖출 것이 요구됐던 상황에 맞게끔 가스공급자 위주로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LNG 공급처의 수가 증가하고 중단기거래의 비중이 확대되는 등 전세계 LNG 산업의 유연성과 개방성이 종래보다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는 도시가스산업의 구조와 요금제도를 가스공급자와 가스소비자 한쪽의 이익에 치우지지 않게끔 개편할 필요가 있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박진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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