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칼럼니스트/스피치 디자이너
김수민 칼럼니스트/스피치 디자이너

몇년 전 졸업을 앞둔 명문대 간호대생을 대상으로 고객서비스(CS)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위 주관으로 진행된 특강이었는데 내 강의가 실제적인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취재를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간호사라는 직업이 전문성과 서비스 정신을 겸비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의 대표적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출발하는 이들의 사명감과 헌신을 소진시키는 요인들에 대해 배우는 계기가 됐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으로서 전문인이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움직여야 하는 고된 육체 노동자다. 여기에 덧붙여 환자, 환자 가족, 의사를 대해야 하는 삼중고를 겪는 감정 노동자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으로 마주치는 사람이 간호사이기 때문에 그 표정과 말 한마디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위로도 받고 불쾌감과 상처도 받는다. 나도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들어갔을 때 환자와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PC만 보고 기계적으로 대하는 간호사를 만나면 맘이 상하곤 했다.

하지만 환한 얼굴로 “어머 할머니, 오랜만에 오셨네요!” 라고 반기면 어머니는 벌써 병이 절반은 나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졸업을 앞 둔 간호대 학생들에게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전달하며 생명을 다루는 소명의식에 대해 열심히 강조했다.

그런데 최근 모 종합병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고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를 거르고 화장실까지 참으며 12시간 고된 업무를 하는 그들에게 퇴근 후 섹시댄스 연습을 시켰다니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안쓰럽게도 했지만,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간호사들의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환자에게 미칠 영향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한 간호사의 일상을 한 신문에서에서 다룬 적이 있다.

“새벽 네 시에 울리는 알람소리를 듣고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킨다. 근무 시간은 오전 7시부터지만, 늦어도 5시반까지는 병동에 도착해 병동 물품을 세고, 10~15명에 이르는 담당환자를 체크하는 라운딩으로 시작해 환자들 식사와 약을 챙기고 대소변 및 식사량을 체크하고 회진 준비를 한다. 끼니를 거를 정도로 바쁜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해 물 떠 와라, 커피 타라, 쓰레기 버려라, 휴지를 뽑아 달라는 등 돌봄 서비스와 관련 없는 심부름을 시키거나 내 돈 내고 서비스 받는데 이런 것도 못 해주냐 며 폭언을 하는 환자와 가족들도 많다.”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경력 1년 미만의 신규 간호사 평균 이직률이 34%이고, 현장을 떠나 쉬고 있는 유휴 간호사도 3만6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살인적인 업무량과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감정노동자 중 텔레마케터나 민원인 창구 근무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전화 상담 중에 “학교는 나왔냐?”는 등 업무 지식 테스트에 “여자가 뭘 알아, 남자직원 바꿔!” 등 몰상식한 성차별 발언,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인사하는 안내요원에게 “니가 날 사랑한다고? 어디 행동으로 보여줘 봐!”라는 성희롱 발언도 예사라고. 심지어 10년간 2만여건의 반복민원을 넣은 스토커형 민원인도 있었는데 민원 한 건을 회신하는데 드는 시간을 10분으로 계산해도 약 4300시간을 한 민원인을 위해 사용한 셈이니 행정력과 세금을 낭비하게 한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전화상담 중에 인격모독을 받고 호흡이 가빠져 응급실에 실려가 휴직까지 하는 경우까지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대면상담이 이뤄지는 곳에서는 물리적인 폭행이 빈번히 일어나기도 하는데 심지어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민원인에게 구직활동 증빙자료와 신분증을 요청했다가 머리채를 잡힌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악성민원은 공공기관 기준 한 해 3만건이 넘을 정도로 비일비재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감정노동자보호법’을 통과시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을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자식, 내 아내, 내 형제자매가 현장에서 그렇게 당한다고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멱살을 잡고 싶을 것이다. 인간이 가진 소중한 본성 중 하나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다. 오늘도 먹고 살겠다고 직업 일선에서 스트레스를 이기며 열심히 일하는 그들은 내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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