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이나 ‘가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가족을 보살피고 지키는 일은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이 견뎌야 할 숙명이다.

비단 가정에서 뿐 아니라 어느 단체, 조직에서든 리더의 존재는 ‘구성원 한 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장이 없으면 일단 조직이 하는 사업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비어있는 사장의 자리를 대신하는 이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선장을 잃은 배가 바다 위를 목적 없이 떠도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요즘 전력공기업들의 처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전력산업계에선 ‘사장’이라는 이름을 만나기 어려웠다. 기관장들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직도 있었지만 더 많은 기관들은 가장의 자리를 비워둔 채 살림을 살아야 했다.

현재 발전회사 5곳은 모두 사장이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5개 발전사 사장들은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이후 후임 사장 선임 절차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이들 발전5사는 지난 3개월 가량을 ‘선장’ 없이 보냈다.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각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그나마 지난주부터 각 발전사별로 사장 선임 절차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지난 9월 사장 공모를 통해 후보군을 추렸던 전기안전공사도 애가 탄다. 하루 이틀 미뤄지던 후임 사장 선임 결과가 벌써 두 달 넘게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탓에 전기안전공사는 공사 최대의 행사인 ‘2017 대한민국 전기안전컨퍼런스’를 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치러야 했다.

임기가 만료된 한전KDN과 한전원자력연료, 전력거래소 등의 후임자 물색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현재 원자력연료는 최종 후보군을 추린 상태다. 한전KDN은 지난 11월 27일까지 공모를 통해 사장 후보자 접수를 마무리 했다.

오래 자리를 비웠던 전력공기업들의 ‘사장’을 인선하는 건 단순히 ‘한 사람’의 자리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조직의 미래 방향을 설정하고, 직원들의 인사를 결정하는 등 부임과 동시에 챙겨야 할 현안들도 한 둘이 아니다.

정부가 선장의 역할에 맞는 최적의 인물을 물색해 하루 빨리 전력공기업들이 정상적으로 다시 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바쁘다고 서둘러서도 안되지만, 여유 부릴 시기는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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