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여진에도 중저준위방폐장은 정상 ‘가동 중’

동굴처분시설 내 사일로 모습. 처분장에는 사일로 6개가 설치돼있다. 벽면에 부착된 모니터를 통해 영구처분된 폐기물 용기를 확인할 수 있다.
동굴처분시설 내 사일로 모습. 처분장에는 사일로 6개가 설치돼있다. 벽면에 부착된 모니터를 통해 영구처분된 폐기물 용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지난해 경주에서 기상청 관측 사상 최대 규모(5.8)의 지진이 일어난 데 이어 인근 지역에서 일 년 사이 규모 5.0이 넘는 지진이 잇따르고 있다. 더욱이 경주와 포항은 인근에 중저준위방폐장·월성원전 등 원전시설이 밀집해있어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본지 기자는 지진이 발생한 이튿날 경주 방폐장 안을 직접 들어가 봤다. 경주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사용된 작업복이나 장갑, 부품 등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하는 곳이다.

포항지진 당시 방폐장의 지진계측값은 0.01443g으로 수동정지 기준 0.1g미만이었지만 지진경보 기준 0.01g(지진 규모 3)을 초과해 지진경보가 울렸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지진이 발생한 직후 재난대응 매뉴얼에 따라 C급 비상을 발령하고, 방폐장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후 58차례 크고 작은 여진(20일 기준)에도 방폐장은 문제없이 가동됐다.

“방문이 가능합니다.”

포항 지진이 발생한 15일 저녁 수화기 너머로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진에도 중저준위방폐장은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 경주까지 먼 길을 와서 헛걸음하지 않게 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불안감이 가슴 한 켠을 찔렀다. 안 그래도 방폐장으로 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데, 강진이 온 다음날은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다.

◆지진에도 정상 가동 중인 방폐장

경주 방폐장은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월성원전 인근에 위치해있다. 방폐장 주변인 청정누리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방폐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원에서 출입을 허가 받은 미니버스로 갈아타야하기 때문이다. 미니버스로 걸음을 옮길 때 ‘삑!삑!’ 문자 알림 소리가 울렸다. ‘[기상청] 11-16 09:02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8㎞ 지역 규모 3.8 지진발생/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여진을 알리는 요란한 문자음과 달리 주변은 고요했다.

강진이 온 다음날 계속되는 여진에도 ‘문제 없다’는 관계자의 말을 재차 확인하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방폐장 지하의 동굴처분시설은 최대지반가속도 0.2g(규모 6.5) 이하에는 끄떡없고, 0.4g(규모 7.2)까지도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략 40km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난 규모 3.8의 여진은 방폐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80만 드럼 부지…10만 드럼 처분장 건설‧운영중

삼엄한 경계를 지나 방폐장 동굴 진입로에 다다랐다. 셔터가 내려진 두 개의 입구가 보였다. 왼쪽 입구는 운영동굴이고, 오른쪽 입구는 건설동굴이다. 운영동굴은 1415m로 방폐물을 지하 방폐장으로 운반할 때 사용한다. 건설동굴은 건설장비와 건설자재의 반출입과 버력(잡돌)을 옮길 때 이용한다.

안내를 맡은 정기룡 원자력환경공단 과장은 “약 206만㎡ 부지에 200ℓ드럼 기준 총 8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단계적으로 건설하고 있다”며 “현재 건설된 1단계 처분시설은 동굴처분방식으로, 10만 드럼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2단계 처분시설로 지상에 12만5000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표층처분시설을 202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후 처분시설 건설은 표층처분방식을 원칙으로 삼지만, 기존 처분시설의 활용도와 효율화를 감안해 방식과 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다. 동굴처분시설이 추가로 건설된다면 굳게 닫힌 오른쪽 입구의 셔터가 열릴 것이다.

정 과장은 “방사능 농도에 따라 방폐물을 재분류해 저준위방폐물과 극저준위방폐물은 표층처분시설로 보내고, 중준위방폐물은 지하 동굴처분시설에서 처분할 계획”이라며 “또 지난해 경주지진 이후 표층처분시설의 내진성능을 0.2g(규모 6.5)에서 0.3g(규모 7.0)로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300년간 잠드는 중저준위방폐물

왼쪽 입구의 셔터가 올라가고 미니버스는 약 1.4㎞ 유(U)자 모양 터널을 20㎞/h 이하의 속도로 내려갔다. 안전을 위해 경사각을 10도로 설정했다. 100m마다 10m씩 깊어진다. 터널 곳곳에 ‘절대감속’, ‘비상등을 켜시오’, ‘천천히’ 등과 같은 안전표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미니버스는 동굴처분시설 출입구 앞에서 멈췄다. 해수면 기준 지하 80m가량 지점이었다. 처분장에 들어가기 위해 특수복과 덧양말, 장갑, 그리고 헬멧을 착용해야 했는데, 덧양말과 장갑은 이른바 농군패션(양말을 무릎까지 끌어 올리는 스타일)으로 입었다. 틈이 생기지 않도록 덧양말과 장갑 안으로 옷을 넣었다.

복장을 갖춰 입은 후 처분장의 문을 열자 외부 바람이 시설 안으로 불었다. 기압차로 인해 공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동굴 내부 압력을 낮춘 ‘에어록(air-lock)’ 때문이었다.

처분장은 차량 하나 없는 적막한 지하주차장 같았다. 발걸음 소리만 터벅터벅 울렸다. 처분장에는 방폐물을 영구저장하는 처분고(사일로) 6개가 설치돼 있다. 사일로는 높이 50m, 직경 23.6m 규모의 원통형 처분시설로 두께 60㎝의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다. 깊이 50m인 사일로의 바닥은 해수면 아래 130m 지점이며, 천장은 원전의 돔을 보는 것 같았다.

6개의 사일로에는 방폐물이 300년간 보관된다. 일반적으로 중저준위방폐물은 300년이 지나면 더 이상 방사성물질을 방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일로가 방폐물로 가득차면 상부를 쇄석(자갈)으로 채운 뒤 입구를 콘크리트로 영구적으로 봉인한다. 동굴처분시설에서 지난 16일 기준 1만1370드럼을 영구 저장했고, 올해에만 4450드럼을 처분했다.

정 과장은 “경주 방폐장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합니다”

처분시설을 둘러본 뒤 밖으로 나오자 특수복 왼쪽가슴에 달린 방사능 감지기는 ‘0.0000m㏜(밀리시버트)’를 가리켰다. 덧양말과 장갑은 쓰레기통에 버려 따로 처리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처분장에 들어갔으면 방사능 검사를 해야 한다. 촬영을 위해 가져간 카메라는 방사능 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 입고 있던 특수복을 반납하고 방사능 측정기에 올랐다. 선 자세로 양팔을 기기에 넣고 5초 가량 지나자 “안전합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방폐장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과 지진으로 인한 우려와 달리 방폐장은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문무대왕릉이 눈에 들어왔다. 죽어서도 왜구 막겠다는 문무대왕의 정기가 서려있는 수중릉은 월성원전, 중저준위방폐장과 1㎞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있다. 문무대왕릉이 바로 보이는 해변에서 아이들이 찬 바닷바람에도 해맑게 뛰놀고 있었다. 공단 관계자가 ‘지나칠 정도로 안전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방폐장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처분장에 들어가기 전 모습(왼쪽)과 처분장을 나가기 전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는 모습. 검사 결과 이상이 없을 경우 “안전합니다”라는 안내음이 나온다.
처분장에 들어가기 전 모습(왼쪽)과 처분장을 나가기 전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는 모습. 검사 결과 이상이 없을 경우 “안전합니다”라는 안내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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