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위 ‘원전축소’ 정책 권고는 ‘탈원전’ 가기 위한 연장선에 불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정부에 ‘건설재개’와 함께 ‘원전축소’ 정책도 권고했다. 원자력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여부만 결정하기로 한 공론화위가 원전정책을 권고한 것은 ‘월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재개 측에 참여한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신고리 5·6호기’라는 꼬리가 ‘원전정책’이라는 몸통을 흔든 격입니다.”

공론화위는 출범 초부터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여부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결정했다. 정부도 몇 차례에 걸쳐 신고리 5·6호기 문제와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고 선을 그어왔다. 공론화위의 원전정책에 관한 권고가 월권이라고 지적받는 지점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원전유지와 원전확대’ 의견을 합하면 ‘원전축소’ 의견보다 1차 조사 때 3.8%p, 3차 조사 때 4.6%p 더 앞섰다. 최종 조사에서만 한 차례 앞서며 경향성 없는 숫자가 나왔기 때문에 통계적 유의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원전정책에 대해서는 최종조사 이전에는 ‘유지 및 확대’ 의견이 더 많았다는 추이에 관한 내용은 담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건설재개 시 후속조치를 묻는 문항도 주관식이 아닌 4지선다형 객관식으로 설문작성자의 의도가 들어갔다”며 “앞선 1~3차 조사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건설재개’를 기정사실로 두고 보고서 작성을 준비한 것은 아닌가”하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공론화위의 최종권고안 발표 이후 정부는 에너지위원회,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통과시켰다. ‘탈원전’에서 ‘에너지전환’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최초 공약의 내용과 차이가 없다는 게 정 교수의 평가다.

그는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한 만큼 전기요금 인상요인,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공장이전 문제, 산업에 미치는 영향, 고용과 일자리 창출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에너지전환 로드맵은 공약을 그대로 올린 것에 불과하고, 지난 4~5개월간의 소통의 결과는 없었다”며 실망감을 내비쳤다.

정 교수는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의 적극적인 참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또 숙의과정을 거듭할수록 건설찬반의 격차가 더 벌어졌으며, 2030세대에서도 건설재개 의견이 우세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당초 500명의 시민참여단을 선정하면 350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마지막 합숙 종합토론회에서 471명이 참석했다”며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고, 시민참여단도 진지하게 토론회 임했다. 단순히 숫자로 나타나는 조사결과보다 원전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중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결정을 유보하던 분들도 숙의과정을 거치면서 판단할 수 있었다”며 “이삼십대가 가장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정보와 토론기회가 제공되면서 건설재개로 기울어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외부 여론기관의 국민여론조사와 시민참여단의 의견에 차이가 보이는 이유도 숙의과정의 유무에 따른 정보불균형에 있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찬반 의견이 팽팽했던 것에 비해 시민참여단에서 건설재개 의견이 19%p 앞선 이유를 충분한 숙의과정에서 찾은 것이다.

정 교수는 최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원전 산업을 지켜낸 공로로 ‘제임스 한센 용기상’을 수상했다. 제임스 한센 용기상은 저망한 기후학자인 제임스 한센 콜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기념해 제정됐다.

그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기존 에너지정책과 방향이 다른데, 기존의 에너지정책을 설계한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다”며 “상 자체는 큰 의미가 없지만, 이 시대에 용기상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와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선입견 속에서 원자력공학자로서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데 ‘용기’가 필요한 현실에 대한 소회였다.

정 교수는 탈원전 정책의 가장 큰 피해는 생산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 논쟁에 휩싸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일이 빨리 마무리되고 연구실로 돌아가고 싶다”며 “부존자원이 없는 작은 나라에서 오직 인력만 가지고 60년간 키워온 원자력 기술과 산업을 생각할 때 사회와 국가,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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