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정확히 알면 하루아침에 포기할 에너지원 아냐”

원자력공학과에 재학 중인 정진호(세종대 3학년), 권재(경희대 3학년), 한장훈(한양대 2학년) 학생(왼쪽부터 시계방향)이 ‘탈원전 정책’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원자력공학과에 재학 중인 정진호(세종대 3학년), 권재(경희대 3학년), 한장훈(한양대 2학년) 학생(왼쪽부터 시계방향)이 ‘탈원전 정책’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편집자주)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이 내일 결정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20일 최종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종권고안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든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을 비롯한 탈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건설재개 및 중단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다. 양측의 마찰음이 커져가는 동안 이해당사자이지만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바로 원자력공학부 학생들이다. 그들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행동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공학부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가 ‘탈원전’으로 바뀌었다.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한가?

▶한장훈(한양대 원자력공학과 2학년, 이하 한) = 부모님이 걱정하시면서 탈원전에 대해 많이 물어보신다. 평소에 발전 분야보다는 방사선의료 분야에 더 관심이 있어서 걱정하지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린다. 또 정권 바뀌면서 갑작스럽게 탈원전 정책이 진행된 만큼 차기 정권에서도 탈원전 기조가 이어질 것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권재(경희대 원자력공학과 3학년, 이하 권) = 가장 먼저 부모님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어찌 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주류였던 ‘선행핵주기’에서 ‘후행핵주기’나 방사선 의료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게 학문적으로는 퇴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진호(세종대 원자력공학과 3학년, 이하 정) =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고 이슈로 떠올랐을 때 우리 집도 특히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어 ‘교수님들도 원자력은 주기적으로 고비가 있었다고 말씀하시고, 마땅히 원자력을 대체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드린다. 하지만 웬만하면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애써 피해왔다.

◆원자력공학과에 진학한 이유나 계기가 있는가?

▶한 = 타 대학의 화학공학과에도 동시에 합격했다. 화학공학과와 원자력공학과를 두고 고민하다가 원자력공학과에 진학했다. 입학 당시에는 원자력이 중요한 에너지원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서 방사선 의료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방사선 의료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원자력공학과를 선택했다.

▶권 = 수능성적이 나온 후에 점수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알아봤다. 고3 담임선생님이 원자력공학과가 전국에 몇 개 없어 희소성도 있고, 원자력 분야가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줬다. 입학할 당시인 2013년에는 원자력이 각광받고 있었다. 사실 주변에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타과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점수에 맞춰 왔을 뿐인데, 한순간에 불안한 처지가 돼버렸다.

▶정 = 나도 성적에 맞춰 진학했다. 수시 2차에서 점수가 가장 높은 학과가 원자력공학과였기 때문에 지원했다. 당시에는 원자력에 대한 전망도 괜찮았다.

◆원자력공학과에 진학한 이후로 원자력에 대한 인식변화가 있는가?

▶한 = 사실 원자력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진학한 만큼 큰 인식의 변화는 크게 없다. 다만 원자력이라는 에너지가 변하는 것이 아닌데 정책에 따라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는 것이 아쉽다. 원자력을 공부하는 의미도 함께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권 = 입학 전후로 인식이 분명하게 바뀌었다. 고등학생 때는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값싼 에너지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고 사용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나니 생각한 만큼 위험한 에너지원도 아니었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기술력도 인정받고, 수출도 하고 있어서 자부심도 갖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원자력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면 하루아침에 포기할 에너지원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 = 고등학교 1학년 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었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은 무섭다는 인식이 진학 때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원자력공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담임선생님과 부모님께 문의하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 현재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다. 대학에 진학해서 보니 원자력은 수출도 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에너지원이었다. 또 안전을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원자력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식도 바뀐다. 원자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원자력계)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 절대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당연하다. 원자력이 안전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불안감은 설득할 수 없다. 원자력을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의를 해야 한다.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공학도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또 안전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하며 적극적인 홍보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원자력은 악’이라는 인식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원자력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려고 해도 원자력공학과 학생이다 보니 ‘악을 내세워 밥줄을 지키려 한다’는 선입견을 피하기 어렵다.

▶권 = 원자력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현 정부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탈원전 정책에 동의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가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 안타깝다. 이 때문에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 = 원자력이 이슈로 떠오른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이 원자력에 대한 전문지식을 국민에게 알려주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국민들이 원자력에 부정적 인식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사용후핵연료’다. 개인적으로 이번 탈원전 논란을 계기로 사용후핵연료 처리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한마디 하자면?

▶한 = 원자력에 큰 의미를 두고 들어온 학생들도 있고 그다지 깊은 생각 없이 들어온 친구들도 있는데, 그들이 정권의 기조에 따라 하루아침에 앞날을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들이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원자력공학과에 재학 중인 정진호(세종대 3학년), 권재(경희대 3학년), 한장훈(한양대 2학년) 학생(왼쪽부터 시계방향)이 ‘탈원전 정책’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 = 원자력공학도 하나의 학문이며, 다른 학문처럼 그 가치가 존엄하다. 하지만 요즘 정치적 문제로 전락하면서 사회갈등의 한 요소로 평가가 절하됐다. 이 때문에 여러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많은 오해들이 빠른 시일 내 해소돼 이로 인한 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 발표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나를 포함한 원자력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기죽지 않고 자부심을 갖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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