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량·에너지 절감 효과 기대되지만
경직적 에너지가격체계, MRV 틀 확립은 필요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이 커지면서 에너지효율향상의무화제도(EERS; Energy Efficiency Resource Standard) 도입 논의가 점점 무르익고 있다. 10년째 논의만 지속돼 온 EERS를 도입할 적기라는 의견과 함께 EERS 도입으로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에너지효율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EERS는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에너지공급사에게 에너지 절감 목표를 부여하는 제도다. 이들 공기업처럼 에너지 사용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 공급자에게 목표를 부여하면, 간접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에너지소비자를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향상을 촉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반영됐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제4차 에너지이용합리화 기본계획’에 EERS 추진계획을 반영하고 논의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에너지요금 인상, 제도 미비, 기업들의 투자비 손실 등의 이유로 제도 도입은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그러다 이번 정부 들어 에너지전환 정책이 가속화되고,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절감 등의 필요성이 증대되며 EERS 도입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상태다.

◆EERS, 기대효과는

EERS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기대효과는 명백하다. 에너지 소비량을 감축하기 위해 공급자에게 에너지 절감 목표를 부여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에너지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 연료비 등 절감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전력생산을 줄이고, 송·변·배전 분야 설비 투자도 아낄 수 있다. 국가적 편익은 대체로 커진다는 분석이 많다.

EERS를 무조건적인 규제라고 보긴 어렵다. 절감 목표를 정부가 보조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 향상 투자사업을 지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EERS 도입은 ‘양날의 검’이라는 진단도 있다. 에너지 공급 의무사들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공급자의 손실을 막아주는 장치로는 ‘디커플링’ 방식이 있다. 판매량이 적으면 요금을 올리고, 반대로 판매량이 많으면 요금을 내려 기업의 수익률을 일정 수준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가격체계의 왜곡 현상을 고려하면 손실이 에너지공급사에게 전가될 수도 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만 놓고 보면 EERS를 위해 효율향상설비에 투자하더라도, 이를 요금에 전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기업의 부담을 강용하기 보다는 정부가 보조금 형식으로 그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에서 시행 중인 제도를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며 “에너지 단가가 정치적, 정무적 판단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기업은 에너지절감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투자 손실은 투자 손실대로 볼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이어 “EERS 이행을 위한 운영 비용이 기업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행방식은 어떻게

EERS 시행 방식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의무적인 규제를 통해 전력소비량을 줄이도록 하거나,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줄인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있지만 기존 에너지효율향상사업 등과 차별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걸린다. 에너지가격체계가 경직적인 국내 특성 상 최종 소비자에게 EERS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가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EERS 공급자들이 정부기금을 조성한 뒤 은행에서 이를 ESCO기업 등에 융자해주는 구조나 배출권거래제와 연계를 통해 EERS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권을 상쇄해주는 방안 등이 점쳐진다.

에너지 절약분이 어떻게 측정하고 관련 실적을 인증·관리하는 주체를 정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에너지 절감에 대한 검증(MRV; Monitoring, Reporting&Verification) 체계가 완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MRV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EERS의 도입은 유명무실한 제도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ERS 대상인 에너지 공급업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사업계획서를 통해 에너지절감 정도를 가늠하고,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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