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주 전력연구원 창의미래연구소 선임연구원
김범주 전력연구원 창의미래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근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발전(發電) 기술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1차 산업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고 판단된다. 18세기에 들어서 영국에서는 면직물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을 개량해 대량 생산이 시작됐는데, 이를 1차 산업혁명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은 석탄을 태워서 물을 끓인 증기의 힘으로 기계를 구동하는 장치였는데, 이 증기 기관은 수력 발전으로 가동되던 면직공장과 제철소에 적용되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증기기관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찰스 파슨스는 증기터빈을 개발했고, 증기터빈은 증기선과 군함, 석탄화력 발전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돼 왔다. 한편, 1900년대 초반 엘링은 가스터빈을 성공적으로 실험하여, 이후 항공기 및 가스화력 발전소에 활용되어 왔다. 스팀터빈과 가스터빈은 압축→가열→팽창→냉각과정을 반복하는 사이클 과정은 같지만, 스팀터빈 사이클은 연소물로부터 열교환기를 통해 열만 받아와서 물을 가열하는 과정이고, 가스터빈 사이클은 연소 가스를 팽창시켜 직접 터빈을 구동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스팀터빈과 가스터빈은 석탄, 원자력, 가스를 연료로 하는 대부분의 발전소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스팀터빈과 가스터빈으로 양분됐던 터빈시장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잠재력을 가진 초임계 CO2 터빈 개발이 최근 가속화되고 있다. 초임계 CO2 발전은 발전시스템의 작동유체를 스팀 대신 CO2를 활용해, 스팀 터빈 대비 효율을 향상시키고 터빈 크기를 소형화할 수 있으며, 석탄화력,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폐열 등 다양한 열원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2000년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도 전력수급계획과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 제시돼 있는 온실가스 감축과 분산전원 및 신재생에너지 보급의 확대를 초임계 CO2 발전의 개발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외에서는 미국이 에너지국(DOE)을 중심으로 가장 활발히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고 있다. DOE 산하의 SNL(Sandia National Lab)에서 수백 kW급 시험설비로 개념 검증을 마쳤으며, 이후 에너지효율 및 재생에너지부(EERE)에서는 선샷 프로젝트에서 태양열과 연계한 초임계 CO2 발전 연구개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DOE에서는 초임계 CO2 발전의 활용범위가 넓은 것을 일찍이 인식하고, DOE의 화력, 원자력, 에너지효율 및 재생에너지 분과가 협력해 STEP(Supercritical Transformational Electric Power)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GE, SWRI(Southwest Research Institute), GTI(Gas Technology Institute)는 STEP 프로그램을 통해 10MW급 화력발전 초임계 CO2 발전 시스템 개발을 작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의 지멘스, 에코젠, EPRI, 중국의 서안열공, 일본의 도시바 등에서 꾸준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는 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자력연구원, 카이스트 등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에서 수백 kW급의 초임계 CO2 발전 루프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한전,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한화테크윈에서 상용화를 위한 MW급 초임계 CO2 발전 시스템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스팀 터빈과 가스터빈을 활용해 발전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전력공급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지만, 설계·제작 측면에서는 부가 가치가 낮은 발전소 건설 중심 EPC(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 설계·조달·시공)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스팀터빈은 중국이 점유율을 높여가며 가격 경쟁시장으로 전환되고 있고, 가스터빈은 여전히 미국·독일·일본·프랑스 등 선진국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발전 분야의 산업 생태계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초기에 터빈을 비롯한 핵심기기의 원천기술 개발 및 실증을 통한 자료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므로, 산·학·연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초임계 CO2 발전 시스템은 발전 효율 향상을 통해 파리기후협약(COP21)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정부의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달성에 기여할 것이며, 차세대 에너지신산업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높으며, 새로운 발전산업 생태계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초임계 CO2 발전 시스템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성능, 안전성, 내구성 및 경제성이 해결되어야 하고, 실증을 위한 Track Record가 뒷받침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석유, 가스 채굴 비용이 상승하고, 재생에너지 개발 및 에너지 효율 개선 비용이 하락하여, 저탄소·신재생에너지·에너지효율향상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따라 초임계 CO2 발전은 소형화와 효율향상의 장점으로 인해 연구개발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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