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 5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시책 점검회의에서 한 말이다. 당시 이 발언을 두고 일부 언론에선 참여정부가 경제권력에 굴복했다며 기사를 쏟아냈다.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든, 참여정부의 굴복으로 받아들이든 경제권력의 영향력이 커질대로 커졌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 역시 경제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이 사건에 관계된 모든 이해당사자들은 각자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업 승계를 수월히 하고, 재벌 총수의 안위를 챙기고, 특정 이권 사업을 따내기 위해 최순실과 거래를 했다는 검찰조사 결과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경제권력은 지금보다 더 공고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분위기가 묘하다. 거칠 게 없었던 재벌 기업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스스로 달라지겠다며 다짐한다. 재벌을 개혁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상조 교수, 청와대 정책실장에 장하성 교수,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검사를 임명하며 허울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덕분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정위가 ‘시장감시자’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국정농단 사태 등에 연루되며 바닥으로 떨어진 공정위의 신뢰도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 이후 미스터피자를 첫 수사 타깃으로 삼으며 ‘갑질 프랜차이즈’를 엄단하고 나선 것도 상징적이다.

지금 시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생각해본다. 시장에 넘어간 권력은 어떻게 변했나. 그리고 시장권력이 이 지경에 이르는 동안 정부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문제의 발언과 함께 했던 말에 힌트가 있다.

“정부는 시장을 공정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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