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위 에너지 전문가들이 배제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현장에서 만난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숨을 쉬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방향이 인간과 환경이란 인류 보편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며,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이 만들어질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장 신고리 5, 6호기 건설중단을 둘러싼 논쟁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신규원전 건설 중단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당선된 후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건설 중단 유보를 결정했다. 다만 시민중심의 공론화 위원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의견을 수렴해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현실을 정확해 반영했느냐다. 계획중인 원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고리 5, 6호기는 30% 이상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미 1조6000억원이 투입됐으며 이를 중단하게 되면 매몰비용이 2조6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또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근로자는 물론, 제품을 납품한 업체, 납품을 준비한 업체들 소위 2,3차 밴더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될 수 도 있다.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결정은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며, 전력 공급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역사적 결정이 될 수 있다. 건설중단으로 결정될 경우 그동안 쌓아온 설계, 건설, 장비 기술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현재 진행중인 원전 R&D도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예전 정권에서 건설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수 있다. 3개월후 시민중심의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려야 겠지만, 원전이 갖고 있는 고유의 기술적 특성과 함께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런 중요한 결정에선 전력정책, 원전기술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떤 결정이 향후 나더라도 정책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대부분의 전력 전문가들은 수명이 다한 원전과 노후 석탄발전을 중단한다고 해서 당장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전력정책은 10년~20년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계획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발전설비 용량이 1억kW를 넘고, 올여름 피크수요 예측이 8700만kW정도 되기 때문에 15% 정도의 예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력수요 예측보다 어려운 것이 공급의 불확실성일 수 있다. 지난 2011년 9.15 순환정전이 당시 전력공급 물량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력공급 계통이 갖고 있는 한계와도 연관돼 있다. 우리나라는 400만kW~500만kW의 대규모 발전단지 중심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한다. 때문에 발전단지 한곳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체 전력계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국가간 계통이 연결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력공급 계획을 세울 때는 고립된 계통을 고려해 계획을 수립한다. 충분한 발전전력을 확보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력수요 증가율이 둔화됐다고 하지만 최근 5년 동안의 수치를 보면 매년 피크수요는 200만kW씩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국내 전력수급 여건은 꾸준한 수요를 반영한 공급력 확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탈핵을 말하면서 독일등 유럽의 사례를 들곤 하지만 전체 전력의 70% 가까이를 원전으로 공급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국가간 전력융통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 충분한 예비력을 갖춘 것은 물론 국가간 계통연결을 통해 전력이 부족하면 인접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유럽을 친환경에너지 공급의 모범 사례로 만들었다.

이런 기반이 부족한 우리는 전력정책을 세울 때 현실에 기반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전문가들의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탈핵, 탈석탄 로드맵이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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