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rove 편집장
김선미 rove 편집장

예전에 제가 잡지에 인용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사실은 사실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지만 이왕이면 사실이었으면 하는 일화입니다.

미국의 한 기업인이 멕시코의 작은 어촌 마을에 갔어요.

한 어부의 보트에 싱싱한 황다랑어가 있는 걸 보고 고기를 잡는 데 얼마나 걸렸냐고 묻습니다. 어부가 얼마 안 걸렸다고 하자 이렇게 묻습니다.

“오래 일하면 더 많이 잡을 텐데 아쉽군요. 그럼 다른 시간엔 뭐합니까?”

“가족들과 맛있는 걸 해먹고 마당에 누워 낮잠도 자고 친구들과 기타도 칩니다.”

“답답하긴. 이 해안에는 고기가 많으니 큰 배를 사서 물고기를 많이 잡아 통조림 사업을 하면 당신은 뉴욕에서 부자가 될 거요.”

어부가 물었어요.

“부자가 돼서 뭐합니까?”

“해안가에 집을 지어야죠. 낚시도 하고 가족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언제든 낮잠도 자고 친구들과 취미 생활도 즐기고…”

저는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인상 깊은 대화긴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 도전하고 모험하고 실패하면서 느끼고 배우는 가치들은 완전히 간과되어 있으니까요. 우리가 노력하는 이유는 돈과 명예뿐만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의 성취감과 희열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반드시 그런 재정적인 성공을 위해서, 그래서 그 성공을 통해 여유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의 길만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한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그 전진 끝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삶을 실패로 규정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입니다.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서 결과만 보고 성패를 진단한다면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애쓰기 위해 사는 것이 돼버립니다.

이건 요즘 들은 일화입니다.

TBWA 대표가 한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역시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20대 참가자에게 들은 이야기랍니다. 선생님이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왜 공부합니까?”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

“왜 좋은 대학에 갑니까?”

“좋은 직장에 가려고요.”

“왜 좋은 직장에 가야 하죠?”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왜 돈을 벌죠?”

“결혼해서 애 낳으려고요.”

“그 다음엔요?”

“좋은 교육을 시켜야죠.”

“그 다음엔?”

“좋은 대학 보내야죠.”

이 문답을 통해 학생들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이 뫼비우스의 띠,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 띠 안에 내 마음과, 기호와, 당장의 기쁨은 어디에 있나요? 오늘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저 역시 무엇을 가지고 무엇이 되고 어딘가에 도달해야지만 비로소 행복하다고 수십 년 째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꼭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었어요. 발전의 짜릿함은, 슬픔의 묘미는, 과정의 익살은, 일상의 환희는, 어딘가에 도착한 안도감만큼이나 값집니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대체로 행복할 가능성이 큽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꾸준히 그리로 걸어가되, 오늘의 행복을 미루면서까지 언제 있을 지도 모르는 언젠가의 행복을 향해 맹목적으로 걸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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