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감성 움직이는 ‘한국의 조명’ 상징

경관조명은 건물의 미관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변화시킨다.

화려한 중국의 마천루와 은은한 로마의 밤거리 야경, 프랑스의 상징성을 나타내는 에펠탑 조명 등에서 미루어볼 수 있듯, 경관조명은 단순히 빛을 비추는 역할을 넘어 도시의 분위기와 나라의 아이덴티티(Identity)까지 대변한다.

전 세계인들도 세계 11위 경제 선진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경관조명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경관조명은 무엇인가. 123층, 555m 높이의 국내 최고층 빌딩 롯데월드타워의 경관조명으로 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감성을 움직이는 빛, 그게 한국의 조명이다.”

◆잠실, 서울, 더 나아가 한국의 아이콘

‘Glory Blossom(찬란한 아름다움이 꽃을 피우다)’. 롯데월드타워의 경관조명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키워드이자 전체 컨셉이다.

롯데월드타워는 우뚝 솟은 건물에 대해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편안히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조명이 갖고 있는 우아함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하나의 작품이다.

롯데월드타워 경관조명의 실시설계와 분석, 설치까지 모든 분야를 책임진 이온SLD(대표 정미)는 디자인 컨셉을 3가지 형태로 분류했다.

빛의 표출을 통해 지역문화의 아이콘에서 서울과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빛(Bright Facade)’과 은은한 빛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롯데다움을 상징할 수 있는 ‘고귀(Noble Facade)’, 밝은 빛으로 안전한 보행로를 조성하는 등 시민을 고려한 ‘환영(Welcome Facade)’이 세부 컨셉이다.

각 컨셉에 맞춰 보행로와 저층부, 상층부로 공간을 나누고, 공간마다 빛의 명암과 강약을 다르게 설정했다. 하나의 공간을 개별적인 작품으로 구현하면서도 전체 컨셉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화에 초점을 맞췄다.

‘빛(Bright Facade)’은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롯데의 고심이 담겨있다.

세계 속에서 빛나는 롯데와 전 세계에서도 중심이 되기 위한 롯데월드타워를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서울의 어떤 위치에서도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에 가시성과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미 이온SLD 대표는 “‘빛’안에서도 층수에 따라 크게 3가지 특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며 “지상 107층~지붕층, 지상 13층~106층, 지상1층~지붕층으로 나눠 어두운 도시를 환하게 밝히는 등대(Urban Lantern)와 예술성이 담긴 컨텐츠로 도심의 갤러리(Urban Gallery), 도시를 상징하는 희망의 빛줄기(Urban Silhouette)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크라운 라이팅(Crown Lighting)이라고 불리는 최상층 등대 부분은 원경 10km이상에서도 인식할 수 있도록 선명하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했다. 지상 107층부터 지붕층까지 설치된 이 부분에는 LED조명과 디밍장치를 결합한 시스템 조명을 설치해 색과 밝기의 조절이 가능하고 에너지 절약과 가시성까지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됐다.

롯데월드타워 측면부에 설치된 노치 라이팅(Notch Lighting)은 ‘고귀(Noble Facade)’를 형상화했다. 지상 1층부터 지붕층까지 양면에 갈라진 두 선을 강조하기 위해 연결된 포인트 조명이다. 건물 측면의 날카로운 선을 우아하면서도 수직적 상승을 강조하는 실루엣으로 연출했다.

선 전체에 설치된 조명은 디밍시스템을 설치해 역동적이면서도 올곧은 롯데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도심의 갤러리로 불리는 파사드 라이팅(Facade Lighting)은 롯데월드타워 전면에 다양한 이미지와 패턴 영상을 표출할 수 있도록 설계된 대형 스크린에 가깝다.

시간과 계절, 문화적 변화에 대응하면서 국내외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경관조명을 활용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롯데의 계산이 포함됐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유력 문구를 새겨 화제가 됐던 패턴 영상도 파사드 라이팅을 적극 활용한 사례다.

지난해 말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주제로 파사드 부분과 노치, 최상부 크라운 라이팅 등을 활용해 겨울의 낭만과 환상을 아름다운 빛의 움직임으로 표현해냈다.

시민과 가장 밀접하게 마주하고 있는 ‘환영(Welcome Facade)’은 팔찌 형태의 화려한 조명을 택해 보행로를 밝게 비추고 눈길을 끌게 하는 효과에 초점을 맞췄다. 차가운 색부터 따뜻한 색까지 광범위한 색을 활용해 다양한 패턴을 연출하면서도 보행자에게 직접 빛을 비추지 않아 눈부심을 최소화했다.

정 대표는 “롯데월드타워는 예술성이 담긴 다양한 테마의 콘텐츠를 제공해 시민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주고 있다”며 “도시 환경과 사람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빛으로 서울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요건 고려한 ‘인간 중심 조명’

2015년 12월 22일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한국에 최초로 세워지는 초고층빌딩으로 주변의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이 공존했다.

조명에서도 불안 요소가 상존해 있었다. 롯데월드타워를 둘러싸고 고층의 주거시설이 배치돼 있어 거주민들이 끊임없이 빛공해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서울시 빛공해 방지법이 처음 제정되며 경관조명 설계 단계에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공군 항로도 문제가 됐다. 조명이 너무 밝으면 전투기 시야에 방해가 되고, 너무 어두워도 야간 비행시 빌딩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조도 조절이 관건이었다.

정 대표는 아파트로 향하는 모든 조명을 간접 조명 방식으로 택하고 주민들과 공군담당자들을 만나 해당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먼저 주거지역과 근접거리를 계산해 각 층별로 조명의 개수와 조도를 다르게 설정했다. 공군의 의견을 반영해 위로 올라갈수록 해상도를 높여 원거리에서도 확연히 구분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과 중국같이 화려하고 독특한 조명 타입을 지양하고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컨셉을 접목해 롯데 측의 만족도를 높였다.

“롯데월드타워는 최초의 초고층빌딩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어두운 도화지에 빌딩만 우뚝 솟아있는 셈이죠. 이런 건축물이 혼자 빛난다면 주변의 시설과 아파트 등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한 곳에 빛을 절제해서 사용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유지보수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도 추가했다.

건물 외부에 조명을 심는 방식 대신, 점검이 어려운 오피스텔과 호텔 외벽에는 LED광원과 광섬유를 연결해 실내 조광기로 제어할 수 있는 이온SLD의 디자인 특허를 접목시켰다. 홍콩 ICC몰의 경우 조명에만 한 해 7만 달러에 달하는 유지관리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롯데월드타워는 공간별로 유지관리 효율성을 따져 해당 기술을 적용,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인터뷰)정미 이온SLD 대표

정미 이온SLD 대표<사진>에게도 롯데월드타워 경관조명 사업은 새로운 도전이자 숙제였다.

프로젝트 수행 기간만 7년. 발주 기업의 만족은 물론 주변 환경과 시민, 공군 등 각종 이해당사자들의 이해와 설득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동안 수행했던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최초로 초고층빌딩에 경관조명을 설치하면서 조명 조도에 대한 기술기준을 맞추고 이를 증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조명의 대표적 특성인 직진성과 확산성을 적절히 배합하는게 조명디자이너의 역할입니다. 롯데월드타워는 여태껏 수행해 왔던 프로젝트보다 고려해야할 요소가 많았죠. 시민들에게 섬세하면서도 은은한 빛을 제공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는 것에 큰 만족을 느낍니다. 작업할 때는 막막했지만 하나 둘씩 묶여있던 매듭을 풀어갔던 과정을 떠올려보면 조명다자이너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쌓은거죠.”

정 대표는 롯데월드타워가 시민과 서울을 방문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는 서울스러운 빛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출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도시 곳곳에 한국 고유의 아름다운 조명이 비춰지는 그날까지 조명디자이너로서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