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한서  MBC Producer
손한서 MBC Producer

요즘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윤식당’

나영석 피디가 워낙 많은 프로그램을 연속으로 성공 시켰기에, 본인이 만들었던 프로그램을 뛰어넘는 히트작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을 또 한 번 뒤집어 버렸다. 우리가 이렇게 ‘윤식당’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사실 같은 피디 입장에서 좀 더 궁금하건 사실이다. 아마 우리들이 한 번씩 꿈꿔 봤지만 실제로 실행할 수 없었던 삶을 화면으로 보여주어서가 아닐까? 마치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말이다. 네 명의 배우가 이국적인 발리의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식당을 운영하며,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놓는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얘기해준다. 그 화면을 보고 있자면, 나도 저렇게 사는 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자꾸 해보게 된다.

요즘 인스타그램 속에서는 ‘한 달 살기’가 유행한다고 한다. 제주도, 치앙마이, 세부, 방콕, 프라하와 같은 낯선 지역, 나의 생활터전을 벗어난 곳에서 한 달을 사는 거다. 제주도의 바람을 맞고, 치앙마이의 바다를 즐기며, 프라하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진들이 스마트폰 속에 자꾸 올라온다. 그리고 우린 일상을 벗어나 내가 시도하기 힘든 멋진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행복해한다. 그런데 계속 엿보다보면 이런 삶이 나에게도 완전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는 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가가 서울보다 저렴한 곳은 꽤 많고, 내가 원하던 풍경과 날씨를 고른다면, 이것이야 말로 생각보다 가성비가 높은 인생의 휴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로 돌아오면, 직장인들은 한 달이 아닌 일주일짜리 휴가를 내는 것도 힘들고, 부모들의 경우엔 아이들의 육아나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답을 찾기가 어렵다. 취업을 준비하거나 잠시 쉬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의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되어, 한국을 떠나 한 달 살아보는 여유를 가지기가 힘들 거다.

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이 정도 사치를 부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 년에 한 달씩은 일에서 해방되어 휴가를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라는 것이 의심될 정도로, 우린 매일매일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미덕이 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장사를 하는 사람도 대부분이 그러하다. 게다가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은 더욱 안타깝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 못한다는 유럽의 나라들을 둘러보면, 조금 덜 벌어도 조금 더 여유를 가지는 인생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그곳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를 만들어 주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사는 인생을 바란다는 것은 어쩌면 배부른 고민인 거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당장은 아닐지라도 이런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게 아닐까? 단지 숫자로만 더 잘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나 역시 소수의 대기업만이 잘나가서 주식시장이 오르고 국가 경제규모가 한 단계 올라가는 것에, 인생의 전부를 맡기지 않도록 다짐해본다. 어쩌면 이번 장미대선에서의 나의 한 표가 이런 세상을 꿈꾸게 했으면 좋겠고, 앞으로 ‘윤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우리들의 진정한 일상이 되어, 더 이상 인기가 없어지는 날을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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