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선 전자부품연구원 박사 (미래부 지정 에너지ICT융합지원센터장)
함경선 전자부품연구원 박사 (미래부 지정 에너지ICT융합지원센터장)

사업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했던가? 사업의 성패는 노력보다는 운에 달려 있다는 말이겠다. 최근 들어 에너지 업계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에너지 신산업을 볼 때 곰곰히 되새겨 봐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문제의 발단은 어떤 사업이 잘 될 것인지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과연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지의 한계 속에서의 제한된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기업은 완벽히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보다는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국한해서 만족할 만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기 다른 판단으로 인해 기업의 행동들은 달라지고 각기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업이 처한 환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기업들의 행동 중에서 그들이 속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 따라 가장 적합한 것만이 선택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의 그 기업의 행동이 결정된다. 즉, 환경에 적합하도록 기업이 진화하는 것이다. 이렇듯, 기업은 그들이 처한 환경이 보내는 시그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스마트폰 혁명을 주도했던 스티브 잡스는 ‘고객은 우리가 보여주기 전에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며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때 전문가의 마케팅 리포트에 의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보고서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찾는 데 노력했다. 다양한 혁신을 선보이며 이에 따른 시장의 반응을 다음 단계의 혁신에 활용한 것이다.

기업이나 정부, 에너지 신산업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행위 주체들은 우리의 인지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물건을 사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어떤 것들이 성공할 지, 좋은 것인지 사전에는 알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직 사후적으로 성공이 결정되는 메커니즘 속에서 에너지 신산업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과 정부를 비롯한 모든 행위자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인 것일까?

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와 도전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이를 통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모험적인 사업가(entrepreneur)들이 혁신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사후의 시장 선택을 기대하며 다양한 혁신을 준비하고 선보여야 한다. 더불어, 기업들은 시장에 의해 선택되는 혁신을 선별하고 그들과 함께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 즉 시장 반응이 좋은 혁신에 투자하여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에너지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혁신을 수용하고 이후에 나타나는 시장 반응을 살펴야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후방 지원도 필수적이다. 기술도 다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만큼 대학과 공공 연구소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에게는 비즈니스에 국한되지 않은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해주고 이를 근거로 공공연구소는 대형 기술을 다양하게 시도해 봄으로써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와 수단을 마련해줘야 한다. 즉, 대학과 연구소로 이어지는 다양성 구조가 기업의 용기 있는 시도를 뒷받침해주는 기술적 원천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는 이러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도록 실패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줘야 한다. 전주기적인 모니터링 속에서 시장 반응이 좋은 혁신이 뒷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역동적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성과 환경 선택의 메커니즘은 오늘날의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성장 전략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제한된 자원을 불확실성에 투자하기엔 위험성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ICT는 매우 유용한 혁신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ICT는 다양한 응용 분야에 쉽고 널리 적용될 수 있고 그 분야의 고유 기술과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대표적 범용 기술로 꼽힌다. 또한 장치 기술과는 달리 저렴하여 투자회수도 쉽기 때문에 불확실성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리스크가 그만큼 작다. 지금 이 순간, ICT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에너지 분야를 새로운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고, 에너지 분야의 기업들은 에너지 신산업을 위해 혁신에 필요한 수단을 찾고 있다. 서로 밀고 당기는 이해관계가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ICT를 통해 에너지 산업에서의 자발적이고 다양한 혁신을 기대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인 셈이다.

에너지 신산업을 추구하는 우리는 돈 되는 사업만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도 사업화 성공을 가장 중요한 성공 지표로 다루고 있고, 대기업의 CEO도 돈 되는 것에만 투자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인지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다양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범용기술인 ICT를 이용하여 중소기업과 대기업,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정부가 다양성 메커니즘 안에서 혁신 주체로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 한다면 아마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성공적인 혁신이 나타나고 건강한 생태계가 자발적으로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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