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은 기술개발·투자 전제조건"
전기조합, 대·중소 역할분담 필요···대기업이 주도하면 “설자리 없다”
태양광 사례처럼 대·중기 조율 통해 일정 기준으로 시장 나뉠 듯


업체 관계자들이 설치된 ESS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이 설치된 ESS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전기조합이 ESS에 대한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한 것은 하루빨리 이 시장의 일정 부분을 중소기업의 업역으로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보급 드라이브정책을 타고 한전, LH 등 주요 발주기관들이 ESS 활용에 시동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초기에 이 품목을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해야만 대기업의 공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4~5년 전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킨 ESS는 정부 전력정책의 아젠더가 전력IT,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신산업 등으로 변화되는 상황에서도 ▲정전 시 비상전원용(가정, 공장, 병원, 전산센터, 통신기지 등) ▲독립전원용(도서, 벽지, 선박, 신호등, 터널 등) ▲신재생에너지 저장용(태양광, 풍력, 조력 등)으로 잠재력을 인정받으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그 결과 한전이 FR(주파수조정) 용도로 ESS 보급을 시작하며 시장의 문을 열었고, 최근에는 배전선로에 ESS를 설치해 계통의 신뢰도를 높이는 ‘배전선로용 ESS 시범보급사업’ 추진계획을 밝혔다. 또 관개용수용 배전선로 대신 이동형 ESS를 개발, 농업용수 공급에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ESS의 쓰임새가 확대되면서 비상발전기를 ESS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장 LH가 예비전원으로 활용하던 비상발전기를 ESS로 대체하는 시범 사업을 실시키로 하고, 용인서천 2단지 총 8개동 중 3개동에 ESS(450kW)를 분산 설치키로 했다.

여기에 2017년부터 건축허가를 신청하는 계약전력 1000kW 이상 공공기관에서는 계약전력의 5% 이상 용량의 ESS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도 시장 확장에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공공기관 건물에까지 ESS가 보급되면 2000억원 규모의 신규시장이 창출되는 등 2020년까지 관련 시장이 6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정부와 업계의 계산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에너지신산업의 하나로 ESS 보급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관련 시장도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때문에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업계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中企, 중기 간 경쟁제품 미지정 시 품질저하, 외산제품 잠식 불가피

ESS에 대한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지정은 이 시장의 일정 부분을 중소기업의 영역으로 반드시 묶어둘 필요가 있다는 중소기업들의 인식이 표면화된 사례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초기부터 대기업이 ESS시장을 장악하면 이 분야에서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어려움이 있는 중소기업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막 확대되고 있는 ESS시장에 대한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기조합에 따르면 현재도 ESS분야에 뛰어든 중소기업은 조합 회원사를 포함해 40~50개에 달하며, 최근 들어 관련 업체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 전기조합은 중기중앙회에 ESS에 대한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하면서 만약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향후 과도한 가격경쟁으로 인한 품질저하가 불가피하고, 중국산 등 해외제품에 밀려 국내 ESS 제조업의 기틀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기조합은 중기중앙회에 보낸 요청서에서 “ESS와 유사한 UPS의 경우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되고 시장이 보호되자 30~40개 업체가 제조에 뛰어들어 기술개발과 고용창출 등에 기여했지만 법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 UPS 민간시장은 약 80% 이상을 해외제품이 점유했고, 나머지는 그나마 공공조달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운 업체가 어렵게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ESS의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기술개발과 연구를 위한 투자확대를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안정적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도 중소기업들이 ESS에 대한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을 주장하는 논리다.

곽기영 전기조합 이사장은 “중소기업들이 (ESS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과 생산투자에 나설 수 있는 전제조건은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이라면서 “새로운 업역을 확보하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전기조합은 현재도 ESS시스템 구성 과정에서 대기업(배터리 생산)과 중소기업(전력변환장치 생산)의 역할이 다르고, 실질적인 제조·설치는 중소기업에서 주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을 통해 대·중소기업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을 유도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한다면 적정 기준은

결국은 ESS도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과정에서 태양광, UPS처럼 일정 용량을 기준으로 그 이하만 중소기업 시장으로 묶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기조합은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하면서 그 기준점을 1000kW(PCS 용량기준)로 제안했다.

전기조합 관계자는 “1000kW는 전기조합이 희망하는 기준이다. 현재 중기 간 경쟁제품인 디젤발전기의 기준용량이 2000kW인데, 그 절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해 제안했다”며 “앞으로 중기청이 지정을 검토하면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ESS가 예비전원으로 활용하던 비상발전기 대체용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기준용량을 2000kW로 설정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디젤발전기는 현재 2000kW 이하 용량만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있다.

ESS산업진흥회 관계자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디젤발전기가 비상전원, 자가발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ESS도 이런 용도로 쓸 수 있으니까 디젤발전기처럼 2000kW 이하를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력은 ESS를 거치면서 평균 20% 정도 손실되고, 배터리도 100% 방전시키면 못쓰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ESS 용량은 태양광발전량의 3~4배 수준이 적정하다고 본다”면서 “그런 점에서 태양광발전장치는 500kW 이하가 중기 간 경쟁제품이니까 ESS의 기준을 2000kW로 정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아직 시기상조지만 저용량이라면…

중소기업청은 ESS에 대한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관계부처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할 수밖에 없다. ESS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의 입장이 변수로 떠오를 수 있는 이유다.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ESS의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재 ESS는 관급시장이 열리기도 전이다. 시장 자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도 아직은 이르다”면서 “기술력을 확보하고, 시장경쟁력을 키워 해외로 진출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인데, 지금 ESS를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면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ESS의 경우 현장과 용도에 따라 설계를 달리해야하기 때문에 규격화 자체가 힘들다며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 논의가 지금 나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단순히 배터리만을 공급하는 대기업과 PCS, PMS 기술만을 갖고 있는 대기업 간에는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배터리만을 공급하는 대기업은 어차피 ESS가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도 중소기업들이 자신들에게 배터리를 공급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외에 전력변환이나 전력관리시스템 기술만을 가진 대기업은 만약 ESS가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기준용량에 따라 이해득실이 달라질 수 있어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저용량의 ESS라면 거의 단품에 가깝기 때문에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해도) 이해가 되는데, 용량이 커지면 시스템 개념으로 볼 수 있어 얘기가 달라진다”면서 “시스템으로 가면 부품 간의 호환이나 통합과정이 더욱 힘들어진다. 결국 이게 기술력인데 중소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ESS업계 전문가는 “태양광발전도 처음에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을 추진할 때 기준선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이견이 있었다”며 “ESS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율이 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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