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방사선보건원 원장

뜨거운 여름이 시작됐다. 더위로 더 힘든 이들은 산업계에서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시원한 냉방 혜택을 볼 수 없는 사람들까지 너무 많을 것이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겹겹이 방호복과 고글로 감싸고 메르스와 싸우는 의료진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숨이 막혀 온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더워하고,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눈이 커지고 앞으로 돌출된 모습으로 진료실로 들어오는 순간 진단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내분비질환 중에는 얼굴만 보아도 진단되는 질병도 있는데, 갑상선기능항진증의 가장 많은 원인인 그레이브스병도 그러하다. 여성 환자들이 대부분으로, 중년여성들 중에는 더위를 못 참고, 신경이 예민해지니 갱년기 증상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환자의 가족들은 성격 좋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니 사람이 달라졌다고 실망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안전 운전과 양보 운전을 하던 사람도 갑상선호르몬이 증가되면 화를 참지 못하고, 운전 능력도 떨어질 수 있어 증상이 회복될 때까지 운전을 피하는 것이 좋다. 드물지만 혈액 내 칼륨의 급격한 감소로 일시적으로 다리가 마비되면 서 있다가도 갑자기 주저앉기도 해서 위험할 수 있다.

목 앞의 갑상선은 평소에는 모르고 지내지만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커지면 목 앞이 튀어나오고 호르몬 생성이 증가한다. 입고 다니던 와이셔츠는 목둘레가 맞지 않아 목이 불편해진다. 납작한 나비 모양의 갑상선에서 나오는 적절한 양의 호르몬은 우리 몸의 대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양이 증가하면 몸은 물론이고 정신상태도 변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은 내분비내과질환이지만 증상이 다양해 다른 진료과를 많이 찾아다니는 열 개의 얼굴을 가진 병이기도 하다. 더위를 못 참고, 아무리 쉬어도 피곤하고, 손에 힘이 없고 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자꾸 숨이 차고 심장이 두근대니 심장내과를 찾아 간다. 맥박이 빠를 뿐 아니라 부정맥도 많이 생긴다. 연로하신 분이 심방세동 같은 부정맥이 생기면 증상이 없어도 이 병을 의심해야한다. 장운동이 활발해지니 설사병으로 소화기내과를, 불면증, 불안증이 생기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도 한다.

젊은 여성들은 불규칙한 월경과 무월경, 또는 불임 때문에 산부인과를 찾게 된다. 임신은 갑상선기능이 정상이어야 가능해진다. 간혹 임신 중에 진단되면 약물로 갑상선기능을 잘 조절해야 태아발달에 지장이 없다. 일반적으로 임신 중에는 절대로 약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어 치료에 어려움이 있다. 임신부와 보호자를 잘 이해시키고 태아에 해가 없는 약을 복용해 임신을 잘 유지해야한다. 신기하게도 분만일이 다가오면 약 용량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약을 중단할 정도로 호전될 수 있어 의사의 치료에 잘 따라야한다. 출산 후에는 대부분 악화돼 다시 치료해야한다.

입맛이 좋아서 많이 먹는데도 오히려 체중은 자꾸 줄어들어 당뇨병을 의심하고, 때로는 당뇨가 일시적으로 동반될 수 있다. 체중이 단시간에 급격히 줄어들면 암을 걱정해 혈액종양내과를 찾기도 한다. 젊은 여성들은 갑상선기능항진증의 치료로 줄었던 체중이 다시 늘어나면 치료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위험한 병이 아니나 드물게는 수술이나 감염, 다른 심각한 병이나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갑상선 폭풍(위기)’이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한다.

또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며 탈모가 생기고, 손에 땀이 많이 나거나 손톱이 잘 부러지고 가려움증도 나타날 수 있어 피부과를 찾는 환자도 있다. 다른 진료과 의사들도 다양한 증상의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잘 발견해야 명의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진찰이 중요하며, 의사의 경험과 관심이 필요하다.

7월 28일, 정부의 공식 발표 후 메르스 사태가 끝나가는 것 같다. 이제 의료진도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간의 의료계의 문제들을 국민들도 이제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의료 체계, 의료 수가, 응급실 시스템과 병실 문화, 질병본부의 현 위치와 역할 등등... 제발 이번 기회로 의료체계가 개선돼 K-의료가 세계 속에서 제대로 인정받아야할 것이다. 속이 확 트이는 시원한 대책들이 시행돼 의료진들의 마음도 시원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예전보다 더 견디기 힘든 더위라면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의심해야겠다. 더운 여름 날,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시원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김소연 방사선보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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