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전에 없이 산재예방행정에 많은 예산과 인원이 투여되고 있다. 공공분야의 산재예방행정 인원은 근로자 1만명을 기준으로 할 때 대략 미국의 7배, 일본의 4배이고 관할범위가 훨씬 넓은 영국보다도 1.5배 많은 정도이다. 그럼에도 통계상으로 뿐만 아니라 체감적으로도 산업재해가 감소하기는커녕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재예방에 많은 자원을 쏟아 붓고 있지만, 산재예방행정이 마치 처벌기관인 것처럼 인식되고 일반경찰과의 차별성을 잃으면서 ‘예방’행정의 존재감과 기여도가 위축됐다. 게다가 법치주의는 실종되고 법행정이 거꾸로 가면서 ‘고비용 저효과’ 행정이 고착화돼 가는 모습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전문성뿐만 아니라 진정성마저 부족한 것에 일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문성과 진정성의 부족은 실효성보다는 보여주기 정치·행정으로 연결되고 있다. 안전의 모든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는 ‘책임의 외주화’와 스스로의 잘못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내로남불’ 행정이 계속되고 있다. 중대재해의 주된 원인인 비현실적이고 엉성한 법기준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고 조직·인원과 물량투입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부처 간, 부처 내, 부처와 산하기관 간에 역할과 기능이 많이 중복돼 행정기관의 감독에 대한 피로도가 극심한 상태다.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안전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고 단발성사업과 처벌만 보인다.

준비 없는 중대기업처벌법 시행으로 중복수사 문제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력의 초점을 중대재해의 대부분이 발생하고 안전역량이 약한 중소기업에 맞추지 않고 생색내기에 도움이 되는 대기업에 맞추고 있는 것도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다. 2023년 1월 설립한다고 공언해 놓은 산업안전보건청은 더 이상 상품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나 몰라라’ 하고 있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먹튀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거친 규제와 처벌 강화라는 손쉬운 방법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기업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안전관계법들이 경쟁적으로 입법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이어 조만간 제정 예정인 건설안전특별법 등 ‘불량안전법’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법원리와 보편적 원칙을 무시하고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들이 ‘개혁’이라는 탈을 쓰고 제·개정되고 있다. 실효성 확보에는 관심이 없고 행정기관의 권한 확대와 미봉적 대책에 급급하다. 그 결과 안전원리는 뒤틀리고 법은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난삽한 상태가 됐다. 법령 자체의 엉성함을 집행기관의 자의적 해석으로 메우는 비정상이 당연시되고 있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현실 인식 자체부터가 단선적이고 이념에 치우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가 노동·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이념적 프레임이나 구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헛발질을 하거나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하청근로자 보호를 강화한다고 해놓고 진단과 처방을 엉뚱하게 하면서 그 보호를 오히려 후퇴시킨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그 전형이다. 비현실적이고 실효성 없는 규제의 남발은 법의 실질적인 준수로 이어지지 못하고 조직적·재정적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게는 체념을 불러오고,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게는 안전수준 향상보다는 감독대비용의 형식적 준수로 대응하게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대기업에서 안전역량을 제고하기보다는 안전에 문외한인 법무법인에 법의 형식적 요건을 중심으로 의뢰하고 있는 현상에서도 그 폐해를 쉽게 엿볼 수 있다.

법 자체에 규범력이 없으면 법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고, 그렇게 되면 범법자는 법을 위반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래서는 법이 예방효과를 거둘 수 없다. 전문성과 진정성의 결여는 실효성 없는 법정책과 기승전-처벌 구도를 심화시키기 십상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근로자에게 갈 것이다. 정부의 법정책에 ‘선구안’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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