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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헌 수석특파원의 금요아침) 전기차의 복수
이종헌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작성 : 2021년 09월 15일(수) 08:04    게시 : 2021년 09월 30일(목) 10:28
전기자동차의 첫 등장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고 인상적이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1828년 헝가리 발명가 아뇨스 예드릭이 전기모터를 발명한 뒤 이를 장착한 차량을 처음 고안했다. 1899년에는 로켓모형의 전기차가 완성되었고 시속 100km의 벽을 돌파했다. 비싼 가격, 충전의 불편함, 짧은 주행거리가 문제였지만 1900년경에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40% 가까이 차지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휘발유 엔진을 갖춘 내연기관 자동차는 칼 벤츠에 의해 1885년 탄생했다. 전기차에 비해 57년이나 늦은 셈이다.

먼저 시동을 건 친환경 전기차가 화석연료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밀리게 된 것은 미국 텍사스에서 대형유전의 개발로 석유의 대량공급이 이루어지면서부터이다. 게다가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 당시 지배 연료였던 석탄과 경쟁하기 위해 저유가 전쟁을 펼치면서 휘발유 가격이 급격히 하락했다. 여기에 1908년 대량생산방식으로 출시된 포드의 내연자동차 ‘모델T’가 값싼 휘발유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기차는 순식간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100년 전 석유차에 참패했던 전기차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그러고 이 복수는 화끈하다. 향후 30년 내에 석유차를 도로에서 완전히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약 10억대 중 전기차는 1,100만대 정도로 1%에 불과하지만 2050년 탄소중립이 실현되면 점유율이 100%로 올라가게 된다. 차량의 평균 교체주기 15년을 교려하면 2035년부터 내연자동차 판매는 거의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불과 30-40년 만에 점유율 0%에서 100%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극적 변화이다.

그러나 전기차의 통렬한 복수는 시장이 아닌 정책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기차의 빠른 침투를 이끌고 있는 보조금, 세제 혜택 등 정책 인센티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유럽, 중국 등 전기차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이미 보조금이 줄고 있고, 이마저도 머지않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의 지배가 ‘예정된 미래’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시장에서 전기차가 선택되기 위해서는 가격이 충분히 낮아져야 하는데 대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제조비용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배터리의 글로벌 공급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문제는 막대한 초기 투자에 비해 이들의 영업이익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자국의 정부와 시장에서 모든 것을 받쳐주는 중국의 CATL은 영업이익률이 12%에 달하지만 핵심 글로벌 공급업체인 우리나라 업체들은 지난 10년간의 적자에서 벗어나서 이제 겨우 손익분기점에 달하고 있고, 영업이익률은 소형 배터리를 포함해서도 5%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향후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여 배터리의 판매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이들의 마진이 크게 개선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리튬, 니켈, 코발트 등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변동비 비중이 75%에 달하고 있다. 배터리 수요가 증가하면 원료 가격도 같이 올라가기 때문에 매출 증가가 마진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원자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과 달리 우리 배터리 업체들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전기차 수요가 올라가 배터리 판매가 증가나면 원료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게 되는데, 이는 배터리의 가격 인하를 막게 되고 전기차의 가격도 크게 내려가지 않게 되어 시장에서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게다가 최근 전기차의 연이은 화재로 배터리 공급업체들이 막대한 리콜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점유율 1%인 지금도 전기차 화재가 적지 않은데 도로의 전기차가 많아질수록 화재도 증가할 확률이 높아진다. 배터리 제조에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데 신생업체가 기존의 특허를 피해가며 설비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배터리 업체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이유이다. 테슬라, GM, 폭스바겐 등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던 완성차 업체(OEM)들이 실제적으로는 기존 배터리 업체들과 합작투자로 선회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기차의 연료인 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약하다. 아직도 전 세계 전기의 40%가 석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전기를 만들면 차라리 환경에 덜 치명적인 석유차를 그대로 쓰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향후 석유수요 감소로 휘발유 가격이 낮아지고 연비가 개선되면 전기차로의 전환이 더 지체 될 수도 있다.

전기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조명용 에너지로 도입될 당시 전기는 쓰기도 어렵고 수송에도 엄청난 비용과 설비가 필요하고 저장조차 되지 않아 일부 대형 건물이나 부유층 저택에서만 사용되었고 대부분은 여전히 고래 기름으로 불을 밝혔다. 전기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미국을 지배하는 에너지원이 된 것은 공급업체의 대폭적인 가격 인하였다. 결국 석유도 전기도 가격이 충분히 내려가야 시장에서 선택을 받을 수 있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시장에서도 이겨야만 전기차의 진정한 복수가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다.



이종헌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국제경제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개발전문위원회 위원

<오일의 공포> <에너지 빅뱅> 저자











이종헌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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