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분단 이후 첫 대화를 시작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1971년 9월 판문점에서 남북 적십자대표가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이후 올해까지 50년 동안 남과 북 사이에 모두 5번의 정상회담과 667번의 대화가 이뤄졌다(KBS 보도). 남북 대화 때마다 남북 철도 연결은 단골 관심사였고 국민들의 기대도 컸었다. 하지만 이제 남북 철도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은“또 그 소리요?”라며 들으려고도 않는다. 왜냐하면 뉴스 매체에 보도되었던 기대와 달리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었던 남북 철도사업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도 조심스럽다. 독자들로부터‘요즘 같은 때 무슨 남북철도냐?’라는 빈정거림을 들을까봐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중 국제고속철도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사업이 우리 한민족과 동아시아 평화에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기준 남한에는 1040km, 중국에는 3만9000km의 고속(화)철도가 운행 중이다. 그런데 만일 서울에서 개성, 신의주, 단동까지 460km의 고속철도가 신설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라산역 근처 이정표에는‘개성 18km, 평양 205km’라고 적혀 있다. 그 이정표를 볼 때마다 평양이 여기서 불과 205km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정표에는 없지만 도라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가 380km다. 신의주에서 단동까지는 20여km에 불과하니 만일 중국의 고속철도처럼 표정속도 300km, 논스톱으로 달린다면 서울역에서 단동역까지 불과 1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 관건은 남북, 북중 국경 통과 방식이다. 현재와 같이 국경 통과를 위해 북한과 중국에서 각각 1시간 반씩 소요된다면 굳이 고속철도를 놓을 필요도 없다. 그냥 일반철도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국경통과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쉥겐(Schengen) 협정이 맺어졌다. EU가 출범하던 2009년만 하더라도 유럽에는 전력공급시스템만 5종류, 신호시스템 21종류, 철도궤도시스템 5종류, 철도운영규칙 또한 각 국가별로 상이해서 국가 간 철도상호운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EU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유럽경제 통합에 제일 걸림돌 중 하나가 국경 통과 방식인 점을 직시하고, 철도운행 시 국경에서의 시간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작업인 국가 간 철도 운행을 통일시키기 위한 기술시방서(TSI) 제작에 들어갔고 결국 17년 만에 TSI를 EU법으로 제정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유럽 철도 여행 때 쉥겐협정 국가 사이의 국경 무정차 통과다.

사실 일반 국민들은 도라산역까지 와볼 기회가 적기 때문에 남북 간 이런 가까운 거리를 실감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러나 남북중 국제고속철도가 개통만 된다면 서울~평양~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축은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 씨가 예측한 대로 세계에서 가장 핫한 투자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중 국제고속철도는 서울~평양~선양~창춘~베이징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연결시켜 배후인구 4억2500만 명, GDP 6000조원의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속철도 메갈로폴리스(거대연담도시) 경제권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외국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2017년 남북중 국제고속철도 신설을 연구할 때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 관계자들을 만난 적 있다. 당시 UN의 대북제재는 엄중했고 남북 관계도 꽁꽁 얼어붙어서 미래가 불투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젠가 경의선축에 고속철도가 놓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럴 경우 자기들도 투자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의 재정이 열악한데 무엇으로 공사 대금을 받아가겠냐”고 묻자 그들은 “역 주변 개발권을 얻고 싶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지금 UN이 대북제재 중인데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EU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남북중 간 국경 통과 기술사양서를 만들거나, 북한 고속철도용 전력공급방식, 열차운행시스템 표준화, 운행열차 표준화 등 사전에 해야 할 일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일 량도 산더미 같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런 사전작업들은 UN제재와는 전혀 무관한 의제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중국과 함께 남북중 국제고속철도 건설과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해야만 한다. 물론 미중 패권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요즘 중국의 일대일로를 염려하는 미국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중 국제고속철도는 북한 철도사업 중 유일하게 수익이 남을 수 있는 사업이며, 주변국 모두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살얼음판이 된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업이란 측면에서 안 되는 100가지 이유를 놓고 떠드는 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붙들고 차근차근 뚫어나가야 할 것이다.

약력 및 저서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2021), 국민북스

한국교통대학교 유라시아교통연구소장

대한교통학회 부회장

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장(전)

러시아 국립극동교통대학교 철도물류학과 초빙교수(전)

중국 淸華大 토목공학과 초빙교수(전)

국토교통부 국가교통조정심의위원회 위원(전)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위원회 전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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