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연간 510억t의 온실가스를 토해낸다. 이 온실가스는 지난 100여년 간 지구의 평균기온을 1도 올렸다. 고작 1도지만 해낸 일은 상당하다. 2020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예년과 달리 오랜 기간 많은 비를 불렀다. 기상청은 북상하던 남쪽의 더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중부지역에 갇혀 전선을 형성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해 9월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계속되던 미국 덴버의 수은주는 폭설과 함께 순식간에 영하 2도까지 급강하했다. 그 원인도 대한민국을 강타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분석이다. 북극의 온도가 올라가니 남쪽과의 기온차가 줄어들고, 약해진 제트기류는 남쪽으로 내려간다. 북서태평양 온도가 올라가면서 더 많은 열에너지를 받은 태풍은 더 강해지고 오래 머문다. 미국과 호주에서 발생한 대형화재 역시 평균기온 1도 상승의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2020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 25년 간 올라간 바다 온도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1초에 4개 씩, 25년 간 36억 개를 바다에 떨어뜨린 열의 양과 비슷하다. 세계기상기구는 21세기 말 평균기온이 3도에서 5도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동식물의 50% 이상이 멸종되고,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농사지을 땅은 물론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소중립을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은 허세적 선언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 부처별 답안지 작성하게 하듯 그렇게 채워서도 안 된다. 탄소중립에 대한 도전은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한 현 시점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휘감은 2020년, 부분적이긴 했으나 경제활동의 강제멈춤을 경험했다. 그래서 치른 암울한 대가는 다 나열할 수도 없지만 감축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고작 5%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조금 더 뚜렷해졌다. 기후재앙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동시에 경제활동과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도 가급적 모든 이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빌게이츠는 저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수요가 50%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2020년 발간된 우드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종 에너지원 중 전력 비중을 현재 22%에서 2050년 66%까지 확대해야 하며, 필요 발전량은 1,630TWh로 기존 시나리오의 2.5배에 해당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예측치의 정확성 여부가 아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정책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애써 그려놓은 에너지로드맵이 아까워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새 에너지정책의 목표를 관통하는 단어는 ‘균형’이다. 에너지정책의 첫 번째 목표는 에너지주권과 기후위기 관리의 균형이다. 에너지주권이란 대한민국 스스로가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 전력을 생산, 공급, 사용,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두 번째 목표는 과학기술적 안전성과 사회문화적 수용성의 균형이다. 세 번째 목표는 에너지정책의 지속성과 탄력성의 균형이다. 에너지정책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책주체와 수단의 과감한 개편이 필요하다. 기술개발과 산업, 에너지분야를 연결해 정책의 정합성과 실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탄소규제는 환경규제와 통합해 규제의 독립성을 담보해야 한다. 탄소국경조정, 수소기술표준화 등 국제적 룰셋팅과 협업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인력양성과 R&D 체질개선, 에너지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같은 에너지인프라도 정비해야 한다. 기술융합과 에너지믹스로 회복탄력성을 완비한 에너지시스템으로 혁신하고, 물-에너지-산림 넥서스로 기후변화 대응성도 높여야 한다. 전력시장과 탄소시장도 쇄신해야 한다. 과시용 법 제정이 아니라 관련법과 제도의 정교한 개혁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 동시에 현안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까마득해 보이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관건은 새 그림을 그릴 의지의 장착이다. 정책의 정치도구화, 정책주체의 정치종속화로부터 자율성을 되찾아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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