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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SK 배터리 분쟁, 이미 1년전 끝난 게임이었다
미 ITC, SK의 증거인멸 강력한 판결 근거 삼아
“ITC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 괘씸죄로 작용
LG 소송전략 100% 적중, 거부권 가능성도 높지 않아
윤병효 기자    작성 : 2021년 03월 05일(금) 15:49    게시 : 2021년 03월 05일(금) 15:58
충북 오창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셀 생산공장.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지난 2월 10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LG)-SK이노베이션(SK)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LG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최근 공개된 판결 전문을 보면 소송은 이미 1년 전에 끝난 상태나 다름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ITC는 지난해 2월 SK의 증거인멸이 포착됐다며 SK에 조기패소 판정을 내린 바 있는데 최종판결에서도 이것이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작용한 것이다.

SK는 ITC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실체적 검증 없이 절차문제로 판결을 내렸다며 마지막 카드인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을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권이 지적재산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미 ITC가 자국 이익을 감안해 일부 유예를 준 점을 감안하면 거부권 행사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SK 노골적 전사적 증거인멸”…열 받은 ITC

5일 공개된 ITC의 LG-SK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문을 보면 SK의 증거인멸은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ITC는 판결문 서두에서 “위원회는 SK의 증거인멸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 판단한다. 증거인멸은 고위층이 지시해 조직장들에 의해 SK 전사적으로 자행됐다”고 지적하며 “관세법 337조 위반 사실을 확인한 위원회는 일부 조정을 전제로 10년의 수입금지 명령 및 영업비밀침해 중지 명령이 (LG에 대한) 합당한 구제책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ITC는 SK의 증거인멸을 일종의 괘씸죄로 판단했다.

ITC는 증거인멸에 대한 설명에서 “자료수집 및 파기라는 기업문화가 SK에서 만연하고 잘 알려져 있었으며 묵인됐다”고 진단하며 “SK의 증거인멸 및 증거개시 과정에서의 더딘 대응과 부정직성으로 초래된 지나친 지연은 이 사건을 신속하게 완료해야 하는 위원회의 법적의무와 ITC행정판사가 정한 절차적 일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2월 공개된 조기패소 판결문에 따르면 2018년 8월 SK 내부에서 오간 이메일에는 ‘경쟁사 BOM(원자재부품설명서) 견적 관련 긴급 요청’ ‘BOM 상세 내용 참고해달라’ 등이 있었다. 이 시기는 폭스바겐 전기차 배터리 물량 입찰이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다.

또한 LG화학 전직자가 보낸 ‘이것이 유일하게 내가 갖고 온 정리된 자료’ 이메일에는 57개의 배터리 제조 핵심비결(레시피)이 들어있는 ‘자동차 모델별 정보’가 첨부됐으며 레시피에는 ▲양극재를 만들기 위한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혼합하는 비율 ▲양극재와 음극재를 얇게 코팅하는 방법 ▲이들을 일정 크기로 절단하는 방법 등이 포함됐다.

ITC는 최종 판결문에서 “위원회는 조사 기록을 기초로 SK가 문서삭제, 이것이 정기관행이라는 변명, 문서삭제 은폐 시도를 노골적으로 악의를 갖고 자행했다고 판단한다”며 “파기된 증거는 SK가 은폐하고자 했던 LG의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돼 있다는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의 분석에 동의하고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SK이노베이션 배터리셀 생산공장.
◆LG 소송전략 100% 적중, SK 속수무책 당해

결과적으로 이번 소송은 LG의 전략이 100% 적중했다.

LG는 국내 기업간 소송임에도 ITC가 증거개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이것이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점, 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점, 미국 시장이 크고 지적재산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을 감안해 2019년 4월 ITC에 SK를 제소했다.

결국 ITC는 LG가 주장한 SK의 증거인멸, 22개 기술에 대한 영업비밀 침해, 폭스바겐 물량수주에 대한 최저입찰가 정보 탈취, SK에 대한 10년간 미국내 수입금지를 모두 받아들였다.

ITC는 “SK가 LG로부터 훔친 22개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10년 내 해당 영업비밀 상의 정보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 명확하다고 판단한다”며 SK에 대한 미국내 10년간 배터리 부품 수입금지를 명령했다.

LG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영업비밀은 ▲전체 공정 ▲BOM(원자재부품명세서) ▲선분산 슬러리 ▲음극 및 양극 믹싱 및 레시피 ▲더블 레이어 (전극) 코팅 관련 ▲배터리 파우치 실링 ▲지그 포메이션 ▲양극 포일 ▲전해질 ▲SOC(충전율) 추정 ▲드림 코스트(특정 자동차 플랫폼 관련 가격 및 기술) 등 11개 카테고리의 22개 기술이다.

SK는 ITC의 판결에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으며 특히 ITC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실체적 검증도 하지 않고 증거인멸이라는 절차적 흠결을 문제삼아 판결을 내렸다고 반발했다.

SK 측은 ITC 판결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은 40여년간 배터리 기술 개발을 진행해 오고 있고 세계 최초의 고밀도 니켈 배터리를 개발 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의 전기차 블루온, 최초 양산 전기차 레이에 탑재됐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화재가 한번도 발생하지 않은 안전한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다”며 “ITC 소송이 제기된 직후 SK이노베이션 발표자료('19년 5월3일)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LG와 SK는 배터리 개발, 제조방식이 달라 LG의 영업비밀 자체가 필요없고, 40여년 독자개발을 바탕으로 이미 2011년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 공급 계약을 맺은 바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SK이노베이션의 독자적인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에 대한 실체적인 검증이 없이 소송 절차적인 흠결을 근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여러 문제들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ITC는 여전히 침해했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LG도 침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ITC 의견서 어디에도 이번 사안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증거는 실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SK, 대통령 거부권 요청 공식화…쉽지 않을 전망

SK는 마지막 절차인 대통령 거부권을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ITC가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60일 이내에 공익(Public Interest)을 감안해 ITC의 판결을 무효화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ITC가 판결에서 공익을 감안해 SK가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폭스바겐과 포드 물량에 대해 각각 2년, 4년의 유예기간을 제공했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ITC 판결문에는 포드가 SK 배터리를 선택하기 전에 이미 영업비밀 침해를 인지한 것으로 나와 있다.

ITC는 판결문에서 “잘못은 SK뿐 아니라 포드처럼 SK의 영업비밀 침해에도 불구하고 장래의 사업 관계들을 계속해서 구축하기로 선택한 이들에게도 있다”고 지적하며 폭스바겐과 포드에 유예기간을 준 것은 “영업비밀 침해가 없는 배터리를 조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판결문을 보면 이미 포드는 SK의 영업비밀 침해 소지를 인지하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SK 배터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대통령 거부권 명분이 별로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SK는 미국 조지아주에 총 3조원을 투자해 배터리셀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9.8GWh 규모의 제1 공장은 올해 상반기 중 시험 가동에 들어가 내년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고 11.7GWh 규모의 제2 공장은 2023년 초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윤병효 기자 chyybh@electimes.com        윤병효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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