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디젤 혼합률 상향 추진에 의견일치 못해
반대 공동입장 내려다 현대오일 동의 안해 좌절
바이오시장 직접 진출 추진, “상생정신 어긋나” 지적

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공장 전경.
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공장 전경.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탈석유 바람에 정유업계의 40년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바이오디젤 의무혼합률 상향을 결정하기 전 업계가 합의를 통해 반대의견을 내려했으나 현대오일뱅크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결국 의견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석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업계가 각자도생에 나섬에 따라 앞으로 의견일치는 더욱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3일 석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7~8월 정유업계는 정부의 바이오디젤 의무혼합률 상향 추진 움직임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석유협회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바이오디젤은 폐식용유를 재활용하거나 팜나무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기름으로 만드는 친환경연료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법에 의거해 수송용 경유에 의무적으로 바이오디젤을 혼합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3%의 의무혼합률을 올해 7월부터 단계적으로 상향해 2030년까지 5%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코로나19와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석유 판매가 급감한 상황에서 혼합률이 높아질수록 경유 판매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좋을 리 없다.

지난해 여름께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혼합률을 상향하기로 하고 당사자인 정유업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이를 알렸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은 혼합률 상향에 반대입장을 보였지만 현대오일뱅크는 혼합률 상향에 반대하지 않았다. 결국 4사는 각자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정책결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됐다.

정유사 한 관계자는 “정유산업이 국내 경제에서 큰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4사의 공동입장은 정책에 반영되는 등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기도 하는데 당시 현대오일뱅크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혼합률 상향을 막지 못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가 바이오디젤 혼합률 상향에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직접 바이오디젤 사업을 준비 중이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바이오디젤 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강달호 사장의 강한 의지 아래 바이오디젤 신규사업을 추진 중으로, 연간 15만㎘급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최근 건설사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디젤 업계는 현대오일뱅크의 시장 진출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골목상권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한국바이오에너지협회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디젤 시장은 연 7000억원 규모에 7개 업체가 평균 매출 1000억원씩 양분하고 있다”며 “여기에 연간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정유사가 직접 진출하는 것은 골목상권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꼴이고 협력사와의 상생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계자는 이어 “바이오디젤 시장에 현대오일뱅크가 진출한다면 에쓰오일도 따라 들어오고 이미 진출한 GS칼텍스는 규모를 더 확대할 것이란 소문도 있다”며 “결국 중소‧중견 규모의 바이오디젤 업계는 정유사에 밀려 모두 도산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바이오디젤의 사용분야가 다양해짐에 따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기업 진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디젤은 자동차용뿐만 아니라 선박, 항공용으로도 사용 확대가 예상되고 화학산업의 친환경 원료로도 각광받고 있다”며 “질적, 양적 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진출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디젤 불협화음은 정유업계의 현 상황과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유 4사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와 에너지전환 흐름에 석유제품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총합 5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정유사들은 석유사업을 대체할 새 주력사업 확보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에쓰오일과 GS칼텍스는 석유화학에 집중하고 있으며 현대오일뱅크도 합작을 통한 석유화학 강화와 함께 바이오디젤을 새 돌파구로 마련 중이다.

1980년 대한석유협회 설립하면서 석유사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한 목소리로 동맹을 유지해 온 정유업계가 각자도생에 나섬에 따라 40년 동맹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편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6월경 의무혼합률 상향 관련해 협회 의견이 반영된 건의문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며 “현대오일뱅크가 당시 반대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