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과제 심의의결, 23일 정부 제안 발표
휘발유 가격 동등 시 초미세먼지 2.5% 감소 효과
운전자·석유업계 반발, 보궐선거 영향 받을 수도

지난해 9월 30일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차 국민 정책제안 기자회견에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정책 제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국가기후환경회의
지난해 9월 30일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차 국민 정책제안 기자회견에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정책 제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이끄는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곧 경유세 인상을 정부에 정식 제안할 예정이다.

경유차 운전자와 석유업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지만 최근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을 제안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0일 본회의를 열고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최종 심의 의결하고 오는 23일에는 반기문 위원장이 이를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4월 출범한 기후환경회의는 그해 9월 단기대책으로 석탄발전 가동 중단 및 상한제약, 5등급 노후 경유차량 운행 제한 등을 담은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정부에 제안해 이를 실제 정책 수립으로 이끈 바 있다.

지난 1년간 국민여론을 수렴한 기후환경회의는 이번 본회의에서 대표과제 8개와 일반과제 21개를 의결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기후환경회의가 가장 중요하고 최우선으로 꼽는 과제는 자동차 연료가격 조정, 즉 경유세 인상이다.

기후환경회의는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이 경유차에 있다는 판단 아래 경유차 운행을 줄이지 않으면 미세먼지 해결은 백약무효로 보고 있다.

기후환경회의 자료에 따르면 경유차의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은 연간 1.46kg으로 동급 휘발유차의 0.15kg보다 9.7배 많다. 2016년 조사 기준으로 수도권 분야별 미세먼지(PM2.5) 배출 비중은 경유차가 26%로 1위, 경유를 사용하는 건설기계가 18%로 2위로 나타났다. 휘발유차는 3%에 불과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국민제안으로 제시한 경유세 인상 방안.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국민제안으로 제시한 경유세 인상 방안.
기후환경회의는 경유세를 인상하지 않으면 경유차 증가세를 막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경유차 등록대수는 2015년 12월 860만대, 2016년 12월 917만대, 2017년 12월 958만대, 2018년 12월 993만대, 2019년 12월 996만대, 2020년 10월 999만대로 지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경유 승용차는 2015년 12월 462만대에서 2020년 10월 587만대로 증가해 전체 경유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3.7%에서 58.8%로 높아졌다.

정부는 수송연료의 효율적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휘발유, 경유, LPG의 상대적 가격비중을 100:85:50으로 정하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 유류세(ℓ당)를 휘발유 745.89원, 경유 528.75원, LPG 184.69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기후환경회의가 제안하는 경유세 인상 방안은 크게 3가지로 ▲1안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을 OECD 평균수준인 100:95로 인상 ▲2안 OECD 환경성평가 권고수준인 100:100으로 인상 ▲3안 경유의 사회적비용을 반영해 100:110~120 수준으로 인상이다.

기후환경회의에 따르면 경유가격을 휘발유 수준으로 높일 경우 경유 소비량은 2019년 대비 4.6%(1115㎘) 감소하고 직접배출 초미세먼지(PM2.5)는 연간 2.5%(247t) 감소, 2차 생성물질 질소산화물도 연간 4.1%(1만8646t) 감소 효과가 있다.

그러나 경유세 인상은 1000만명에 가까운 경유차 운전자들과 타격이 클 석유업계의 강한 반발, 그리고 실질적 최대 장애요인으로 꼽히는 정치적 영향이 가장 큰 난관이다.

국내 최대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의 회원들은 경유세 인상에 대해 “화물차 연료가 다 경유인데 경유가격이 오르면 물가도 오르는 거 아니냐. 월급 빼고 전부 오른다” “처음부터 경유차를 못 팔게 했으면 모르겠는데 실컷 팔아 놓고 이제 와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결국 세금을 더 걷으려는 의도 아니냐”라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석유업계는 과학적 입증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영국 정부의 연구에서 도로부문의 미세먼지 발생은 자동차 배출구뿐만 아니라 타이어나 브레이크패드 마모 등 비배출구의 비중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좀 더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모든 경유차를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화물차나 노후 경유차 등 실질적으로 배출이 많은 차량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환경국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의 브레이크 및 타이어 마모로 인해 발생되는 미세먼지가 도로부문 미세먼지 발생의 60~73%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4월 7일 열리는 보궐선거가 경유세 인상을 힘들 게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기후환경회의가 당초 지난해 경유세 인상을 추진하려다 올해 4월 총선을 의식해 올해로 미룬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내년 보궐선거가 총선급으로 치러질 예정이어서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유세 인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강한 반대였지만 최근 기류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당시 기재부 세제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경유세 인상이 미세먼지 절감에 실효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전혀 고려할 게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기재부 담당자는 한 언론매체에 “(경유세 인상은) 전혀 검토 안한다”며 강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깜짝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배출비중이 가장 큰 수송부문의 감축목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기차나 수소차 보급이 더 빠르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경유세 인상으로 경유차에 대한 소비자편익을 줄이고 반대로 친환경차에 대한 편익을 높이는 정책이 나오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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