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농도구배 기술 개발, 세계 최고 배터리산업 견인
차세대 배터리 아직 멀어, 리튬이온 당분간 계속
특허료, 세금 등 떼면 20%뿐 기술개발자 처우 개선 필요

우리나라가 반도체를 이을 또 하나의 먹거리산업을 일궜다. 바로 전기차의 핵심 ‘배터리’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7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의 총합 점유율이 35.6%에 달해 우리나라가 미국, 중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배터리산업의 시장규모가 2025년 182조원으로 성장해 169조원의 메모리반도체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국내 배터리산업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끈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2005년 처음 개발한 ‘농도 구배(concentration gradient)’ 특허기술 덕분에 국내 업체들이 폭발 위험이 현저히 감소하면서도 최고 성능을 발휘하는 배터리를 개발·보급하기 시작해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한양대에서 만난 선 교수는 기자에게 대뜸 매소성전투를 아느냐고 물었다. 매소성전투는 675년 신라 문무왕 15년에 경기도 양주지역으로 추정되는 매소성에서 신라와 당나라가 15년간 치른 나당전쟁의 승패를 가른 기념비적 전투를 말한다.

선 교수는 “배터리는 반도체를 이을 다음 먹거리가 될 것이다. 절대 중국에 뺏겨선 안된다. 중국으로부터 특허 사용 요청이 왔지만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라며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는 것만이 우리나라가 살길이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연구분야로 몰릴 수 있도록 기술개발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터리산업이 본격화된 지 불과 5~6년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오래전부터 배터리를 연구하게 됐나?

“박사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평상 힘들었다. 그러던 중 당시 쌍용정유(현 에쓰오일)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입사했다. 하지만 5년간 근무를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군대를 다녀와야 했다.

이후 박사과정을 받은 뒤 삼성종합기술원에 들어가 리튬폴리머배터리 개발 연구팀장을 맡았다. 당시 인력들이 우리나라 배터리 1세대들이다.

우리나라 배터리 개발은 1992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배터리가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묶이면서 대기업이 손도 못 댔다. 그러다 1991년 일본 소니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리튬이온배터리를 개발하면서 정부가 중요성을 깨닫고 적합품목에서 제외하면서 삼성, LG 같은 대기업들이 뛰어들게 됐다.”

▶배터리의 여러 분야 중 양극재를 집중 연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박사 과정 중에 촉매를 연구했다. 촉매는 종류가 많은데 그중에서 산화물 촉매를 연구했다. 촉매를 만들 때 합성하고 테스트하는 것이 리튬배터리의 코발트옥사이드(LCO)와 비슷했다. 합성기술을 이용해 양극재를 연구하게 됐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높아지면 용량은 증가하지만 열 안전성이 떨어진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2000년 한양대에 오면서 배터리 기술개발 타깃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다 니켈 함량을 높이는 것이 유망할 것으로 보고 연구를 하게 됐다.

2001년부터 본격 연구를 시작해서 4~5년가량 하다보니 방법을 알게 됐다. 그 뒤로 2005년 코어쉘(1세대 농도구배) 기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2015년 4세대 기술까지 오면서 100여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코어쉘 기술개발은 당시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혁신이었고 현재의 농도구배 기술은 세계에서 나밖에 갖고 있지 않은 기술이다.”

▶농도구배 기술이란 무엇인가.(濃度勾配 : 한자 뜻으로는 농도를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리튬이온배터리의 NCM(니켈 코발트 망간) 양극재는 니켈 함량을 높이면 용량이 증가하지만 안전성이 떨어지고 코발트와 망간 함량을 높이면 안전성이 높아지지만 용량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농도구배 기술을 적용하면 두 가지 특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양극재 활물질의 파티클(입자)은 속이 꽉찬 야구공이라고 보면 된다. 농도구배 기술을 적용해 파티클의 중심부에는 니켈 리치를 하고 주변부에는 망간 리치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용량을 높이면서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농도구배 기술을 적용하면서 새로운 것도 발견하게 됐다. 파티클 전체에 농도가 균일하면 파티클 구성이 동글동글해서 쉽게 균열이 생긴다. 리튬이온이 들락날락하면서 부피의 팽창과 수축이 일어나는데 이로 인해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전해액이 들어오면서 못 쓰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농도구배 기술로 하면 파티클의 구성이 라드(lod:길쭉한 막대) 형태로 돼 균열이 잘 생기지 않는다. 길쭉한 돌로 쌓여 있는 시골의 돌담장을 생각하면 된다.

테슬라, 파나소닉의 NCA(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배터리는 1000번의 충방전 사이클을 거치면 수명이 80%로 감소하는데 농도구배 기술을 적용해 보니 3000번 사이클 이후에도 수명이 84.5%가 나왔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리튬이온배터리 시대는 언제까지라고 보나?

“이차전지 개발 역사를 보면 납축전지에서 니켈카드늄까지 40년 걸렸고 니켈수소까지 오는데 90년 걸렸다. 니켈수소에서 리튬이온으로 오는데 2년밖에 안됐지만 평균적 개발기간을 보면 30년가량이 된다. 기술적으로도 리튬이온을 따라올 기술이 별로 없다고 본다.

리튬메탈이나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많이 연구하는데 둘 다 안전성 확보가 쉽지 않아 개발이 어렵다.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바꿔 안전성을 대폭 높인 전고체배터리는 콘셉트는 좋으나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LG화학에서 테스트비행에 성공한 리튬황배터리는 근본적 수명 한계를 해결 못했다. 드론 같이 멀리가야 하지만 오래 안 써도 되는 100번가량의 사이클 기기에는 적용이 가능하지만 전기차, 휴대폰, 노트북에는 사용하기 힘들다.

나노와이어, 실리콘 등이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느냐는 퀘스천이라고 본다.”

▶최근 중국 NCM 배터리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 아직 기술력이 미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농도구배 특허 사용 요청은 안 왔나?

“왔다. 얼마를 줄 테니 특허를 사용할 수 있겠냐고 제안하더라. 하지만 중국에 특허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혹시 매소성전투를 아는지 모르겠다. 신라 문무왕이 긴 싸움 끝에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물리친 싸움이다. 당나라가 신라를 왜 도와줬겠나.

배터리는 반도체를 이을 다음 먹거리산업이다. 절대 이것을 중국에 뺏기면 안된다. 우리 연구진에도 중국 연구원이 몇몇 있지만 핵심 기술 연구에는 못 들어오게 하고 있다.

배터리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세계 최고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어 걱정이 크다.”

▶기술개발자 처우는 어떤 점이 문제인가?

“일례로 특허 비즈니스가 굉장히 아마추어적이다. 특허 비즈니스란 쉽게 말해 특허로 기업과 사용계약 등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특허 비즈니스를 굉장히 잘하는데 우리는 잘 못한다. 전문인력이 해야 하는 일을 일반인이 하고 있으니 아마추어적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미국 하버드에서 계약하면 우리보다 아마 100배는 더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인드는 아직도 농업국가에 머물고 있는듯하다.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허료에 대한 세제도 문제다. 통상적으로 특허 수익은 개발자와 대학이 6:4로 갖는데 그 전에 대학에서 특허등록 제반비용을 제하면 실제 비율은 4:6이 된다. 그 수익에서 46%의 근로소득세가 적용되고 종합소득세까지 적용되고 나면 남는 수익은 전체의 20%도 안 된다.

평생을 연구에 바친 것에 대한 보상인데 왜 이것이 근로소득으로 분류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특허 수익에 세금이 없었다.

원천기술 하나가 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다. 기술개발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연구분야로 몰려 들고 이를 통해 기술강국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배터리 전문인력 양성을 맡고 있는 한 책임자로서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배터리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전문인력 수요도 기학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력 좋은 교수들이 배터리분야로 오고 있어서 이전보다 인력양성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산업에서 요구하는 규모에는 절대 부족하다.

국가 차원에서 인력양성에 신경 쓰고 있지만 좀 더 확대해서 기업의 수요를 조사해서 거기에 맞는 공급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연구분야뿐만 아니라 전문 생산인력도 양성하면 훨씬 더 산업이 효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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