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계획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기업도 속출
재생E 확대하려면 ESS 보급 늘려 유연성 보완해야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한 ESS 화재사고로 인해 정부가 ESS 활성화에 소극적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제공=연합뉴스)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한 ESS 화재사고로 인해 정부가 ESS 활성화에 소극적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제공=연합뉴스)

에너지저장장치(ESS) 업계가 화재 사태 이후 좀처럼 허리를 펴지 못하는 모양새다. 최근 이어진 ESS 화재사고 이후로 정부가 ESS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는 업계의 푸념이 이어진다.

ESS 사업을 추진하다가 관련 사업본부 규모를 줄이거나 철수하는 기업들이 최근 속출하고 있다. ESS 관련 사업을 주력으로 삼던 기업들도 최근 ESS 매출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 하나 둘씩 업종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복수의 ESS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업계는 정부가 ESS 시장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7년 이후 30여 차례 발생한 ESS 화재 탓에 정부가 ESS 산업을 키우는데 신중해졌다는 관측이 많다. 한 차례 안전 대책을 내놓았지만 다시 이어진 화재 탓에 정부가 ESS에 대한 제대로 된 활성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 ESS 정책이 배터리 제조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무조건 많이 보급하는 식의 인센티브 제도가 이어졌고, 장기적인 생태계 육성보다는 단기적인 확대 정책에 그쳤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 같은 문제 탓에 ESS가 전력망에 기여하는 바가 적어 세금을 엉뚱하게 낭비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다.

배터리 위주의 보급 정책에만 초점이 맞춰져 안전과 효율적 운영, 계통에 대한 기여 등에 대한 고려가 없어 ESS 정책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에서 첫 단추를 바로 잡을 노력이 아닌, ESS 민간 시장을 사실상 포기한 듯한 정부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과거 정부의 ESS 보급 활성화 정책에 발맞춰 배터리뿐만 아니라 PCS, 유지관리, 설치, 운영 등 다양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갑자기 무너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월 ESS 신규설비의 충전율(SOC)을 80(옥내)~90(옥외)%로 제한토록 하는 내용의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추가적으로 기존 설비에 대해서도 충전율 제한을 지킨 설비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미 1년 반여 간 잠들어 있던 ESS 시장을 깨우기엔 불충분한 정책이라는 것. 이에 대한 진흥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ESS 산업 활성화를 위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꼬집었다.

여기에 더해 한전의 피크저감용 ESS에 대한 요금특례 축소와 태양광 연계 ESS의 REC 가중치 일몰 등 지속적으로 사업성을 악화시킬 요인들이 남아 있는 만큼 업계의 사업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그린뉴딜의 일환으로 내놓은 정책이 한전 등을 통한 공공 ESS 확대다. 업계는 이 같은 대책이 민간 시장에 대한 유인책이 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정책적 무관심과 관련 최근 일고 있는 그린뉴딜 바람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재생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과 달리 재생에너지 발전원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간헐성을 해소하기 위한 ESS 시장 확대를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에너지 분야의 한 전문가는 ESS를 앞으로 변화할 시장에 따라 부족해질 유연성을 확보할 수단으로 내다봤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출력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속응성 자원이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석탄, 가스, 원자력 발전소는 모두 엄청난 규모의 터빈을 회전시키는 구조체로 이뤄져 고장이 발생해도 터빈이 한 번에 멈추는 게 아니라 천천히 속도를 줄이게 된다. 발전소 하나가 탈락하더라도 갑자기 주파수가 끊어지는 게 아니라 보호 체계가 작동할만한 시간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의 경우 문제 발생 시에 이 같은 여유시간 없이 주파수가 한 번에 끊어지게 된다고 이 전문가는 강조했다.

이처럼 부족한 유연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전기를 저장했다가 방전함으로써 출력에 안정을 줄 수 있는 ESS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그린뉴딜을 통해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는 만큼 ESS 확대가 필연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전문가는 ESS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그린뉴딜 역시 반쪽짜리 정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ESS는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분야인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 다른 국가에 추월당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며 “해외에서는 점차 ESS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한국만 이렇게 주저앉아서 될 일인가. 화재사고에 대한 안전대책은 충분히 마련된 만큼 좀 더 용기를 갖고 ESS 활성화에 나서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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