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게 R&D(연구개발)를 물으면 애증의 대상이라 할 것이다.

누구나 하면 좋은 걸 알고 있지만 방법이 쉽지 않고, 사실 안 해도 당장 먹고살 만한 바로 그런 것이다.

과거 취재하던 여러 중소기업들이 그랬지만 지금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전선업계 또한 그러한 분위기다.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R&D는 기업의 미래를 책임진다. 그래서 분야와 규모를 막론하고 미래를 보는 회사라면 R&D에 투자한다.

전선업계에서 R&D는 정말 소수의 기업들이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대기업이다.

어느 중소 전선업체의 현장에 가니 R&D센터에서 완제품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표에게 묻자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세운 것”이라 답한다. 이는 R&D를 하는 대부분의 중소 전선업체의 상황과 같다.

제대로 된 R&D를 하지 않는 이유로 대부분 업체는 할 필요가 없었다고 대답한다. 과거 몇 차례 경제 붐을 타며 전선은 황금기를 보냈다. 그 위용은 땅을 파서 기름이 나오는 산유국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그 영광에 갇힌 곳들이 생겨났다.

다른 이유도 있다. 신제품을 개발해봤자 그 단순함 때문에 방 경쟁사에서 카피해간다. 들어간 개발비만큼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더 높은 기술력을 목표로 해야 할 부분이다.

보수적이라는 특성도 있다. 신제품이 개발되고 상용화에 들어간다고 해도 ‘전력망’이라는 중요국가시설에 공급되는 만큼 아주 조금의 불량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단점이 있더라도 알고 있는 제품을 사용할지언정, 장점이 크더라도 단점을 알 수 없는 제품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강한 보수다. 잘못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도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새로운 전선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제한된 시장 안에서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곳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전선업체들도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다. 그리고 그 방향은 가격을 내리는 제살깎기가 아닌 제품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대기업들이 왜 당장 쓰지 못할 걸 알면서도 상용화를 발표하고 레퍼런스를 쌓아가는지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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